환경부, 2025년 12월 백색목록제 도입
평가 기준에 동물복지 내용 빠진 채 논의 중
버려지는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준비 중인 백색목록 평가 기준에 '동물복지'가 빠진 채 추진되는 것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동물의 '삶의 질' 보장 여부가 평가 기준에서 빠진다면 백색목록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무늬만 백색목록제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29일 환경부와 동물권에 따르면 환경부는 2022년 12월 개정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산하기관인 국립생물자원관을 통해 아생동물 백색목록제 도입을 위한 용역을 발주하고 최근 이해관계자 간담회를 열었다. 2025년 12월 도입될 백색목록은 법정 관리를 받지 않아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야생동물을 '지정 관리 야생동물'로 분류하고 이 가운데 특정 야생동물종의 목록을 작성해 이에 포함된 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야생동물종의 수입, 판매, 개인 소유를 금지하는 제도다. 백색목록을 도입한 국가로는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크로아티아, 룩셈부르크, 몰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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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목록 평가안 보니 복지 부문 삭제
국내에서 멸종위기종이나 생태계 교란 생물 등으로 분류되지 않아 법정 관리를 받지 않는 야생동물은 3만2,880종 가운데 1만9,670종(59.8%)이다. 개체 수로는 85%나 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1~2019년 수입된 살아 있는 야생동물은 총 350만여 마리로, 연평균 39만여 마리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키우기 어려운 야생동물 사육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생태계 파괴와 인수공통감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 백색목록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는 간담회 자리에서 포유류, 조류, 파충류별 '지정관리 야생동물 백색목록 평가표' 가안을 공개했다. 이는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분류군인 파충류에 대한 백색목록 연구 용역 결과로 제시된 평가표에 기반한 것이다.
당초 용역 과정에서 평가 기준은 '동물복지와 사육 난이도', '안전성', '공중보건 위해성', '생태계 위해성', '종 보전 위해성'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 하지만 최종 단계에서는 동물복지 부분이 빠지고 평가 기준이 단순화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가안을 보면 평가 기준을 크게 '안전성'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 나누고 분야별로 각각 4개 기준을 포함시켰다. 안정성에는 위험성과 질병 전파 가능성, 서식지 적합성 등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는 기후 적합성, 교잡 영향 등이 담겼는데 기존 용역 과정에서 논의된 수준보다 간소화됐다.
동물단체와 전문가들은 평가 기준에 동물복지 항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담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던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길러도 되는 야생동물을 정하는 데에 '인간의 환경에서 잘 살 수 있는 동물인가'가 평가 기준으로 포함되지 않았다"며 "백색목록의 취지대로 최소한의 동물종만 포함돼야 하며 동물복지도 그 주요한 기준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한규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도 "동물의 복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키우는 사람도, 동물도 힘들게 된다"며 "수입 단계부터 동물복지 기준을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다만 "종별 동물복지 기준을 마련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면서 "수입허가 대상을 보수적으로 선정하되 조건부 허용 등 융통성을 발휘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허술한 기준 도입되면 제도 취지 되레 훼손
환경부는 동물복지 기준을 다른 평가요소에 포함해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사육·관리 시 공간적, 영양·환경적 요소를 충족할 수 있는지 등을 서식지 적합성 등과 같은 평가요소에 포함시켜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평가 기준의 단순화 지적에 대해 "이해관계자 간담회,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객관적 자료에 기반한 평가가 이뤄지도록 평가항목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백색목록의 취지는 가정에서 야생동물의 습성을 고려해 기를 수 있는 최소한의 동물만 허가하고 이 외의 동물은 기르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미 백색목록을 도입한 국가의 평가 기준에도 동물복지가 우선적으로 반영돼 있다"며 "허술한 기준으로 도입한다면 제도의 취지를 되레 훼손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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