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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잡고 닭털 뽑던 요리사는 왜 오리 찾는 탐조가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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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잡고 닭털 뽑던 요리사는 왜 오리 찾는 탐조가가 됐을까

입력
2024.09.13 10: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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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조류 관찰 ‘짹짹휴게소’ 홍승민 대표
신메뉴 개발하다 깃털 색감에 매료
조류 가락지 부착 봉사로 탐조 시작
“새들의 치열한 삶에 '경외감' 느껴
생태감수성 지닌 시민 양성하고파”

지난달 29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솔개공원에서 '짹짹휴게소' 홍승민(왼쪽) 대표와 이승현군이 탐조활동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지난달 29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솔개공원에서 '짹짹휴게소' 홍승민(왼쪽) 대표와 이승현군이 탐조활동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어, 슴새다!”

제10호 태풍 산산이 북상 중이던 지난달 29일 오후 울산 울주군 서생면 솔개공원. 강풍에도 태연하게 탐조(探鳥·자연에서 새를 관찰)에 몰두하던 홍승민(28) 짹짹휴게소 대표가 갑자기 소리쳤다. 먼바다로 나가야 볼 수 있는 여름철새 ‘슴새’가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것. ‘섬’새인지 ‘슴’새인지도 모르는 기자가 “도저히 못 찾겠다”고 하자 홍 대표는 “자주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새를 보는 안목이 생긴다”며 “집 주변에 있는 새부터 관찰해보라”고 권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잖아요? 탐조가 딱 그래요.”

하필 태풍 영향권에 든 날을 택한 건, 새들도 바람을 못 이겨 해안선으로 붙어서다.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먼바다에 사는 새를 관찰할 수 있는 '길일'이라는 얘기다. 특히 울산은 주전, 대왕암, 서생 등 바다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많아 초보 탐조가에게 안성맞춤이다. 실제 이날 탐조 30여 분 만에 중부리도요, 도둑갈매기, 제비갈매기, 괭이갈매기 등 제법 많은 바닷새를 만났다. 그중엔 파도에 떠밀려온 조류 사체나 낚싯줄과 그물에 몸이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새도 있었다. 홍 대표는 “바닷새는 보통 평균 수명이 30년인데 그물에 걸리거나 쓰레기를 먹어서 5년도 못 살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새를 보호하자고 하면 사람부터 살자고 하는데, 새가 없는 곳에선 사람도 살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29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솔개공원에서 노끈에 묶인 괭이갈매기가 상공을 날고 있다. 괭이갈매기의 기대수명은 평균 24년이지만 외부 환경에 의해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 짹짹휴게소 제공

지난달 29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솔개공원에서 노끈에 묶인 괭이갈매기가 상공을 날고 있다. 괭이갈매기의 기대수명은 평균 24년이지만 외부 환경에 의해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 짹짹휴게소 제공

영락없는 새 전도사인 홍 대표는 2년 전만 해도 오리를 잡고 닭털을 뽑는 게 일상이었던 요리사였다. 그는 "신메뉴 개발과정에서 색채미술을 공부하다 깃털의 풍부한 색감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이후 새를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국립공원에서 생태관찰용 '가락지 부착조사' 자원봉사를 신청했고, 거기서 날개깃이 다 빠진 채 피를 흘리며 바다를 건너는 어린 촉새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 탐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새 관찰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종’을 뜻하는 스파크 버드(Spark Bird)가 있는데, 홍 대표에겐 바로 그 촉새가 스파크 버드가 됐다. 그는 “생존을 위한 치열하고도 처절한 몸부림에 절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다”며 “내가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7일 홍승민(왼쪽 두 번째) 짹짹휴게소 대표가 낙동강 하구 조류 조사 후 회원들과 생태환경 보존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짹짹휴게소 제공

지난 4월 27일 홍승민(왼쪽 두 번째) 짹짹휴게소 대표가 낙동강 하구 조류 조사 후 회원들과 생태환경 보존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짹짹휴게소 제공


홍승민 짹짹휴게소 대표는 매주 울산 고운중학교에서 탐조동아리인 ‘조(鳥)동아리’ 친구들에게 생태교육을 하고 있다. 짹짹휴게소 제공

홍승민 짹짹휴게소 대표는 매주 울산 고운중학교에서 탐조동아리인 ‘조(鳥)동아리’ 친구들에게 생태교육을 하고 있다. 짹짹휴게소 제공

홍 대표는 그 길로 고향인 울산에 돌아와 조류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지난해부턴 새를 모니터링하는 모임 ‘짹짹휴게소’를 만들어 시민 60여 명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짹짹휴게소는 철새들이 이동하는 중간 기착지인 우리나라가 휴게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데 착안해 지은 이름이다. 회원들은 탐조활동은 물론 새를 위협하는 방음벽이나 유리창 충돌, 로드킬, 쓰레기 얽힘 피해 관련 조사도 병행한다. 1년 만에 노란부리백로, 큰부리도요, 큰뒷부리도요, 뿔쇠오리, 알류샨제비갈매기 등 울산에 살고 있지만 몰랐던 멸종위기종을 발견해 알리는 성과도 거뒀다. 전 세계에 1,300여 마리만 남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청다리도요사촌’을 발견해 화제가 된 이승현(15·문수중 3)군도 짹짹휴게소 회원이다. 등교하기 전 버스를 타고 탐조에 나설 정도로 새에 진심인 이군은 “새를 관찰하면서 자연스레 환경 문제도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해 생태계가 망가지지 않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제10호 태풍 산산이 북상 중인 지난달 29일 울산 울주군 솔개공원에서 짹짹휴게소 홍승민 대표가 회원 이승현군과 강풍에 밀려온 새들을 관찰하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제10호 태풍 산산이 북상 중인 지난달 29일 울산 울주군 솔개공원에서 짹짹휴게소 홍승민 대표가 회원 이승현군과 강풍에 밀려온 새들을 관찰하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제10호 태풍 산산이 북상 중인 지난달 29일 울산 울주군 솔개공원에서 짹짹휴게소 홍승민 대표가 회원 이승현군과 강풍에 밀려온 새들을 관찰하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제10호 태풍 산산이 북상 중인 지난달 29일 울산 울주군 솔개공원에서 짹짹휴게소 홍승민 대표가 회원 이승현군과 강풍에 밀려온 새들을 관찰하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홍 대표는 많은 시민들이 탐조를 통해 풍부한 생태감수성을 지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조류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생태교육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새는 피사체가 아니라 생명이고, 이 생명의 존엄을 일깨우는 활동이 탐조죠. 거창한 장비는 필요 없습니다. 맨눈만 챙겨오세요.”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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