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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가 전부가 아니다... 보넥도·영파씨·키오라의 흥행 반란

입력
2024.09.22 16:11
수정
2024.09.22 16:2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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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대형 K팝 기획사 '음악 흥행 공식' 밖 살아남기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그룹 영파씨 신곡 '에이트 댓' 뮤직비디오 한 장면. 뮤직비디오 영상 캡처

그룹 영파씨 신곡 '에이트 댓' 뮤직비디오 한 장면. 뮤직비디오 영상 캡처


그룹 영파씨. 연합뉴스

그룹 영파씨. 연합뉴스

모두 잠든 깊은 밤,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고 오래된 양옥의 마룻바닥에서 발뒤꿈치를 든 채 살금살금 걷는 사람이 있다. 도둑이 아니다. 부모님이 잠든 틈을 타 자동차 키를 슬쩍하려는 이 집 아들이다. 19세인 그는 어떻게든 부모님 눈을 피한 곳에서 일탈을 꿈꾼다. 그렇게 경차를 몰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나니 "오빠, 엄마 진짜 화났어"라며 동생이 전화를 걸어 왔다. "우린 철부지"라며 방황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아이돌그룹 보이넥스트도어가 이달 낸 노래 '부모님 관람 불가' 뮤직비디오 속 장면이다.

뮤직비디오를 하나 더 보자. K팝 시장에서 보기 드문 여성 힙합 아이돌그룹 영파씨가 지난달 발표한 노래 ‘에이트 댓’ 뮤직비디오 배경은 한국이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다. 차고를 확 낮춘 올드카(로우라이더)에 올라탄 멤버들은 시동을 거느라 애를 먹는다. 그렇게 덜컹거리며 출발한 풍경엔 둔중한 비트에 신시사이저 소리가 국숫발처럼 얇게 뽑히는 멜로디(지 펑크·G funk)가 이어져 흥을 돋운다. 캘리포니아, 로우라이더 그리고 지 펑크. 닥터 드레와 스눕 독 등 1990년대에 흑인 음악 좀 들었다면 모를 수가 없는 미국 서부 힙합에 대한 오마주다.

그룹 보이넥스트도어 신곡 '부모님 관람 불가' 속 한 장면. 뮤직비디오 영상 캡처

그룹 보이넥스트도어 신곡 '부모님 관람 불가' 속 한 장면. 뮤직비디오 영상 캡처


그룹 보이넥스트도어. 연합뉴스

그룹 보이넥스트도어. 연합뉴스

보이넥스트도어와 영파씨는 이렇게 '레트로 코드'를 음악에 적극 활용한다. 보이넥스트도어는 '부모님 관람 불가'가 수록된 앨범 '19.99'에 '돌멩이' 등 20세기 팝 스타일의 곡을 줄줄이 실었고, 영파씨는 전작 'XXL EP'에서 1990년대를 풍미했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히트곡 '컴 백 홈'을 재해석해 불렀다. 두 그룹 모두 흔히 말하는 4대 K팝 기획사의 중심에서 살짝 비껴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보이넥스트도어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 소속(KOZ엔터테인먼트)이지만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아닌 지코가 앨범 제작을 총괄했고, 영파씨는 핑클 등을 배출한 DSP미디어와 비츠엔터테인먼트가 합작해 만든 그룹이다.

그룹 키스오브라이프의 노래 '미다스 터치' 뮤직비디오 한 장면. 뮤직비디오 영상 캡처

그룹 키스오브라이프의 노래 '미다스 터치' 뮤직비디오 한 장면. 뮤직비디오 영상 캡처


그룹 키스오브라이프. KBS 제공

그룹 키스오브라이프. KBS 제공

이렇듯 레트로 감성을 활용해 4대 K팝 기획사의 '음악 흥행 공식'을 벗어난 아이돌그룹이 주목받고 있다. 노래 '스티키'로 올여름 K팝 시장을 강타한 그룹 키스오브라이프도 흥행 반란의 주인공이다. 중소 기획사 S2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키스오브라이프는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스타일을 그들의 음악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했다. 지난 4월 발표한 '미다스 터치'는 이효리의 '텐 미닛'(2003)과 미국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톡식'(2003) 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멤버 나띠는 솔로곡 '슈가코트'(2023)에서 그 시대 유행했던 음악적 스타일을 적극 활용해 관심을 끌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보이넥스트도어와 영파씨 그리고 키스오브라이프의 성공 비결은 '레트로 열풍'의 유행 그 너머에 있다는 점이다. 보이넥스트도어 멤버 명재현, 태산, 운학은 현실감 넘치는 노랫말로 복고풍의 친숙한 멜로디를 귀 쫑긋 세워 듣게 만든다. 멤버들의 21세기적 자유분방함은 옛것을 새롭게 만드는 영파씨의 비밀무기다. 키스오브라이프는 길게는 10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거치며 쌓은 안정적인 춤과 노래 실력으로 레트로한 음악 속 여유로움을 능숙하게 무대에 펼쳐낸다. 대형기획사와 거대자본 말고는 어떤 '답'도 없어 보이는 2024년 K팝 시장에 기획과 실력의 조화가 일군 또 다른 탈출구가 열렸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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