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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가 수능?" 손가락질받아도… 푸른 수용복의 소년수들은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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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가 수능?" 손가락질받아도… 푸른 수용복의 소년수들은 '학교'에 간다

입력
2024.09.25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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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50일 앞둔 '만델라 소년학교 수능준비반'
14~17세 소년수 전담 시설... 12명 수능 응시
무기형 없는 소년범죄, 재범 막을 교육이 중요
"'학교' 울타리 자체가 소중" 삶의 태도 다잡아
대학 진학보다는 기초학력·인성 교육이 우선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50여 일 앞둔 23일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 내 만델라 소년학교의 생활관 수용 거실에서 한 소년수가 책을 보고 있다. 그는 올 11월 이 교도소 내부에 차려지는 시험장에서 수능을 치른다. 박시몬 기자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50여 일 앞둔 23일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 내 만델라 소년학교의 생활관 수용 거실에서 한 소년수가 책을 보고 있다. 그는 올 11월 이 교도소 내부에 차려지는 시험장에서 수능을 치른다. 박시몬 기자


'쟤네들 수능이 왜 필요하냐' '죄를 짓고 대학에 가려는 거냐' '범죄자들에게 꿈 같은 거 심어주지 말자'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겐 격려와 응원이 쇄도하기 마련이지만 지난해 11월 '1호 교도소 수능 시험장' 탄생 기사엔 이렇게 부정적 댓글이 난무했다. 피해자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준 범죄자에게 '교육이, 수능이, 대학이 가당키나 하냐'는 취지의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올해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 내 '만델라 소년학교'에는 다시 수능 시험장이 꾸려진다. 23일 이곳에서 만난 소년수 12명과 교도관 '선생님'들은 50일 후 치러질 2025학년도 수능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건 교육과 공부가 소년범의 재범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는 공감대가 있어서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교실

만델라 소년학교 수능준비반 교실에서 국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박시몬 기자

만델라 소년학교 수능준비반 교실에서 국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박시몬 기자

만델라 소년학교는 지난해 3월 소년수들의 재범 방지와 출소 후 사회 적응을 목표로 신설된 만 14∼17세 소년 전담 교정시설이다. 소년교도소는 소년원보다 훨씬 중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소년(14세 이상 19세 미만)들이 소년부 재판이 아닌 형사 재판에서 '징역형'을 받을 경우 보내진다. 현재 수감 인원은 40명 조금 안 된다.

수능준비반 교실 창문엔 튼튼해 보이는 굵은 쇠창살이 쳐져 있었다. 교복 대신 푸른 수용복을 입은 소년들의 가슴팍에 수인번호가 선명했다. 하지만 오후 2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알림 종소리에 이내 '학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수업은 연세대 교육학과 재학생 김수민씨가 맡은 국어 과목. 소년들의 교재엔 오답을 알리는 '빨간 비'가 수없이 그어져 있었으나 그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되살피고 밑줄을 쳤다. 갑자기 칠판 위쪽 TV화면이 켜지며 '○○○ 접견'이 화면에 떴다. 김씨는 "○○이 다녀와"라고 잠시 수업을 중단했고, 한 소년이 일어나 나갔다. 수업 도중 접견을 나가는 모습에 이곳이 '창살 안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만델라 소년학교 수능준비반 교실에서 소년수들이 자습용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만델라 소년학교 수능준비반 교실에서 소년수들이 자습용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교훈은 "넘어져도 일어서는 법 배우기"

만델라 소년학교 정문 쇠창살 사이로 학교의 교훈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명언이 새겨진 문패가 걸려있다. 박시몬 기자

만델라 소년학교 정문 쇠창살 사이로 학교의 교훈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명언이 새겨진 문패가 걸려있다. 박시몬 기자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만델라 학교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남긴 명언을 교훈으로 삼고 있다. 중·고교를 자퇴하거나 퇴학당해 학교와는 담을 쌓았던 과거를 안고 있는 소년수들은 이곳에서 비로소 '배움'이 뭔지 깨우쳤다. 학업 단절을 막기 위해 시작한 공부는 어느새 짧은 소년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출소까지 10년이나 남았지만 수능반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A군은 "저는 절대 용서가 되지 않는 일을 했다"며 "수험생 이전에 수용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왜 공부하느냐'는 질문에 소년은 쉬이 입을 떼지 못한 채 미리 써온 답변지만 만지작거렸다.

만델라 소년학교에 수감된 한 소년수가 '학교'의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학교는 꼭 필요한 테두리"라고 적었다. 박시몬 기자

만델라 소년학교에 수감된 한 소년수가 '학교'의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학교는 꼭 필요한 테두리"라고 적었다. 박시몬 기자

중학교도 마치기 전 만델라 학교로 온 A군의 목표는 '대학'이 아니다. 그는 "대학에 못 간다고 해도 학식을 넓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학교는 꼭 필요한 테두리. 삶에 필요한 지혜, 실패와 성공을 맛보게 하고 방황을 막아주는 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출소 후 '제2의 삶에 방향키'를 쥐여준 존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앞으로 그냥 잘 살겠다'는 다짐도 만델라 학교에서 '재능기부를 하며 살겠다'는 목표로 구체화됐다. 수학을 잘하는 그는 다른 소년수들의 수학 문제풀이를 돕곤 한다.

만델라 소년학교에 수감된 소년수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만델라 소년학교에 수감된 소년수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올해로 두 번째 수능에 도전하는 B군은 수능 며칠 후 출소한다. '출석만 하면 되는 곳'이라고 여겼던 학교지만, 지난날 잘못된 삶을 수백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수능 때 날 선 반응에 대해서도 그는 "처음에는 마음이 아프긴 했는데, 제가 잘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라며 좋은 선례가 되겠다고 마음을 더 굳게 먹었다. 이어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이 있는데, 잘 빨면 조금은 더러울지언정 수건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복 벗은 '선생님'... "교육이 곧 재범 방지"

소년수들의 버팀목은 교도관들이다. 만델라 소년학교를 총괄하는 이상민 팀장은 '범죄자들을 왜 공부시키냐'는 지적에 대해 "재범 방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무기형'이 없어 최장 15년이 지나면 사회로 복귀해야 하는 소년범들의 재범률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높다. 2024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출소자 중 다시 범죄를 저질러 수감된 비율(재복역 비율)의 경우 20세 미만이 38%다. 10명 중 4명꼴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두 배가량 된다.

이 팀장은 "이들을 방치해 재범할 때 드는 사회적 비용보다는 교육비용이 덜 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빵이나 정비 기술을 배우는 직업훈련을 시키면 되지 수능을 왜 보느냐는 시선에 그는 "이 나이대(14~17세) 아이들은 기초학력이 아예 없어서 필기도 따지 못한다"며 "가장 큰 취지는 대학 보내주는 게 아니라 기초학력을 쌓아 사회에 적응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민(오른쪽) 만델라 소년학교 팀장과 홍정환 체육담당 주임이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이상민(오른쪽) 만델라 소년학교 팀장과 홍정환 체육담당 주임이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체육 교과 정교사 자격증이 있는 홍정환 주임은 '밀착'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수능준비반에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중고졸 검정고시반 소년수들도 그가 관리한다. "s-c-h-o-o-l'(학교)의 뜻은커녕 알파벳도 몰라서 그림으로 인식해서라도 외우라고 했어요." 홍 주임을 비롯, 이곳의 '선생님' 6명은 소년수들과 심리적 거리를 줄이기 위해 영화 속 교도관들이 입고 신는 '군청색 정복'과 '검은색 구두' 대신 회색 재킷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는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올해 검정고시에선 전체 58명(고졸 57명, 중졸 1명)이 합격했다. 전 과목 만점자도 1명 나왔다.

만델라 소년학교 수능준비반에서 연세대 재학생 김수민씨가 국어 수업을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만델라 소년학교 수능준비반에서 연세대 재학생 김수민씨가 국어 수업을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담장 밖에서도 이들을 돕기 위한 손길이 적잖다. 올해 1월부터 국어 강사로 매주 이곳을 찾는 김수민씨는 "공부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참고 견디는 연습"이라며 "소년범죄는 사회 구조와 아이들 각자가 소속된 가정환경 등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하기에 분명히 교화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었던 이들을 상대로 수업을 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김씨는 "올 초엔 아이들이 수업을 '관람'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젠 먼저 '수업하시죠'라고 한다"며 "1월과 9월의 아이들의 눈빛, 태도는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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