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풍경화의 비밀(5) : 클로드 로랭의 '픽처레스크 풍경화'
편집자주
좋은 예술 작품 한 점에는 질문이 끝없이 따라붙습니다. '양정무의 그림 읽어드립니다'는 미술과 역사를 넘나들며 대중과 함께 호흡해온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여러분의 '미술 지식 큐레이터'가 되어 그 질문에 답하는 연재입니다. 자, 함께 그림 한번 읽어볼까요.
아름다운 자연이 담긴 풍경화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곳곳에 비밀스러운 문화 코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릴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일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풍경화 속엔 읽을 것이 넘쳐난다. 미술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해줄 풍경화 명작을 골라 10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아름다운 자연이 눈앞에 펼쳐질 때 우리는 "한 폭의 풍경화 같다"고 말하곤 한다. 대자연이 빚어낸 생생한 세계를 마주하고도 우리는 그 속에서 익숙한 풍경화의 한 장면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는 잘 연출된 풍경화를 기대하면서 감상하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마음속엔 전형적인 풍경화 한 점이 자리하면서, 그런 그림 같은 자연을 만날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림 같은 풍경'의 그림이란 어떤 것일까. 사실 풍경화라고 하면 큰 나무 한두 그루가 그림 안에 우뚝 서있고 강을 따라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장면을 떠올릴지 모른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그림이 그런 풍경화가 아닐까.
클로드 로랭, 풍경화의 기준이 되다
이 그림은 클로드 로랭(1600~1682)이 1648년에 그렸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그림 같은 풍경화'의 기준을 만든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구약성서의 한 장면을 담은 것인데, 화면 한가운데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평화로운 풍경이 인상적이어서 오랫동안 '물레방앗간'으로 불린 작품이다.
먼저 안정적으로 짜인 구도가 눈길을 끈다. 그림을 보면 배경의 밝은 하늘이 어두운 전경과 강한 대조를 이루지만, 중간에 푸른 강이 시원하게 흘러 균형을 맞춘다. 특히 나무가 양옆으로 늘어서 시선을 인도하며 다리나 물레방아 같은 건축물도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그림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화면을 감싸는 부드러운 빛이다. 그림자의 위치를 보면, 해가 화면 위에서 거의 수직으로 햇빛을 내리쬐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 위에 쏟아지는 빛은 엷은 구름과 대기를 통과하면서 적절히 중간톤으로 누그러져 그림의 세부를 우아하게 비춘다.
이런 목가적인 유토피아 속에 여러 인물도 등장한다. 전경에는 한 무리의 사람이 흥겹게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는 장면이 담겨 있는데, 화면 중앙의 인물들이 기댄 나뭇등걸에서 미세하게 글씨가 발견된다. 이를 통해 이 장면이 이삭과 레베카의 결혼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창세기 24장 1-67).
로랭은 이와 유사한 형식의 풍경화를 자주 그렸다. 주로 신화나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풍경에 담아 유려하게 풀어내었다. 그는 일찍부터 고향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해 로마 주변의 풍경을 기초로 서정적인 풍경화 형식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지금은 진부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가 형식적으로 완성시킨 클로드풍의 풍경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 시대의 풍경화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16세기 초에 그려진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풍경화와 비교하고자 한다. 알트도르퍼는 독일 태생으로 풍경화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에 자연을 소재로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가 1518년에 그린 '다리가 있는 풍경'을 보면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감상의 포인트를 찾기가 쉽지 않다. 화가는 나무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 면에서 건물과 다리 등 중심과 주변의 관계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다.
반면 로랭의 풍경화는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균형 있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특히 방금 살펴 본 알트도르퍼의 풍경화와 비교하면 그림 중앙이 시원하게 비어 있어 탁 트인 전망을 선사한다. 우리의 시선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 중앙으로 시원하게 뻗어 나간다. 건물과 숲, 인물과 인물들이 단계별로 배치되어 시선이 지그재그로 화면 양쪽을 오가다가 중앙의 먼 하늘 쪽으로 물러나게 조절된다.
이번엔 로랭과 같은 시대에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화가의 풍경화와 비교하고자 한다. 지난번 글에서 살펴본 네덜란드 작가 메인더르트 호베마의 풍경화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위의 호베마의 그림 속엔 이 시기 네덜란드에 실제로 있었을 법한 신작로를 따라 사냥꾼 등 여러 인물이 자리하고 있다.
호베마는 동시대 네덜란드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풍경을 그릴 때 실제 세계에 가깝게 그리려 했다. 이 과정에서 호베마가 사진처럼 풍경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려내기보다는 약간의 작가적 해석을 가미해 재해석했음을 지난번 글에서 자세히 다뤘다. 다시 말해 호베마의 눈에 보이는 사실 같은 풍경화는 새롭게 독립한 네덜란드의 평화와 번영을 강조하기 위해 약간의 각색을 거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적 해석도 로랭의 풍경과 비교하면 훨씬 직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림 속 건축물도 실제 존재하는 건물들이고, 인물도 신화나 성경의 내용과 관계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빛도 훨씬 자연스럽게 대상을 비추고 있어 우아하게 조절된 로랭의 빛과 확연히 다르다.
이제 우리가 알게 된 것이 있다. 물레방아가 도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식상할 정도로 뻔해 보이는 로랭의 풍경화가 이 그림이 등장했던 당시에는 매우 독창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너무 거칠지도 않고, 지나치게 미화하지도 않으면서 자연을 균형 있게 그려낸 로랭의 풍경화에 많은 이가 열광했다.
그림 같은 영국식 정원의 탄생-스타우어헤드 가든
로랭의 추종자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헨리 호어 2세(1705~1785)이다. 그의 집안은 은행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모아 영국 남동부 윌트셔에 여의도 네 배만 한 11㎢의 거대한 땅을 소유했다.
호어 2세는 이 땅을 물려받고 얼마 후 여기를 자기가 좋아하던 로랭의 풍경화처럼 만들겠다는 꿈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는 일찍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로랭의 '아이네이아스가 있는 델로스섬의 풍경'을 접했고, 이 그림과 똑같은 풍경을 실제로 구현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호어 2세는 1744년부터 25년간 막대한 재산을 쏟아부었고, 결국 자신이 소유한 땅을 로랭 풍경화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냈다. 그 결과가 바로 영국식 정원의 전형으로 알려진, 런던 인근의 스타우어헤드 가든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연못이나 언덕,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고전적 신전 건축물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스타우어헤드 가든이 완성된 후 이곳을 방문한 호러스 월폴은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그림 같은 곳'이라고 묘사했다. 그림 같은 풍경, 문자 그대로 그림 같은 '픽처레스크 정원(picturesque garden)'이 탄생한 것이다.
18세기 후반 영국에 등장하는 이 같은 픽처레스크 정원은 프랑스식 정원과 함께 서양 정원 양식의 양대 축을 이룬다. 프랑스식 정원이 기하학적 질서를 강조한다면, 영국식 정원은 자연의 원래 모습을 살려 부드럽고 원만한 곡선을 살린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고 영국식 정원이 자연을 그대로 살리는 건 아니다. 원하는 풍경을 얻기 위해 토목공사와 댐 건설 등 과감한 지형의 변화를 시도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그림 같은 세계, 즉 픽처레스크 풍경의 기준점에 로랭이 창조한 풍경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랭이 펼쳐낸 한없이 평화롭고 여유로운 풍경화가 어떤 이에게는 자기가 소유한 땅을 바꿔놓을 만큼 강렬한 시각적 욕망을 일으켰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정원의 역사까지 변화시켰다. 그림 한 점이 주는 힘이 작지 않다는 생각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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