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재미학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사회, 정치, 경제, 외교.안보등에 관한 주요 이슈를 다루고자 한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모습과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글로벌 시각에서 제시하려 한다.
독일 통일과정과 확연히 다른 '두 국가론'
북한 급변사태, 중국에 주도권 상실 우려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 실패 사과 필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남북 두 국가론’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하지 말자”며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주장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에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호응하는 것이냐고 비판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종북을 넘어 ‘충북’이라고 일갈했다. 야권에서도 부적절한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두 개의 국가론’은 과거 분단 독일에서 나왔던 담론이고, 그의 말대로 남북한 모두 유엔에 동시 가입할 때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다수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가 통일을 원치 않는 것도 사실이다. 임 전 실장이 종북이나 충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바람대로 현실에 맞춰 새로운 담론에 대한 '건강한 논의'를 하자는 것도 찬성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문재인 정부의 북한 올인 정책과 그 실패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 ‘운전자론’ ‘중재자론’ 운운하다 임기말엔 남북관계가 악화되었고, 차기 정부에 부담을 준 데 대한 성찰이 이뤄져야 새 담론을 위한 건설적 토론이 가능하다. ‘두 개의 국가론’이 현실론에 입각한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국제적 현실을 무시한 것이며 역사의식도 결여되어 있다. 이런 논리라면 핵을 가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협상을 할 것이다.
분단 시절 독일을 보자. 동독은 일찍부터 두 국가론을 주장했다. 동독 헌법에는 애초 통일 관련 조항이 없었고, 1953년 울브리히트 당시 서기장은 두 국가론을 제시하면서 동서독이 국제법적으로 상호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독은 1970년대에 들어서야 브란트 총리가 이를 수용하며 후일 통일의 기반이 된 ‘신동방정책’을 추구했다.
얼핏 보면 북한과 동독의 두 국가론 그리고 브란트와 임종석의 주장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서독의 입장은 동독이 국경을 개방하는 만큼 동서 간의 경계를 국경으로 인정하고,동서 간의 관계를 자유화하는 만큼 동독의 국제적 위상 확대를 돕겠다는 취지였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통일은 어렵다는 인식하에 윤석열 정부를 적대적으로 몰기 위한 것으로 동조해선 안 된다.
또 국제사회에서 남북관계 주도권을 상실할 수도 있다. 지금은 그나마 특수관계임을 인정받는데 '여러 국가 중 하나'(one of them)라면 그런 대우를 받기도 어렵다. 중국이 왜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중국’을 고수하는지 곱씹어보자.
북한 급변사태가 생길 때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역사적 근거와 논리도 약화될 수 있다. 남북이 같은 민족인 것은 국제사회가 다 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국은 북한을 동북 4성 중 하나로 여길 수 있다. 동북공정의 핵심이다. 한국인에게 고구려는 한국의 역사이지만 중국 입장에선 중국 영토였기 때문에 북한을 또 다른 티베트로 만들려고 할 수 있다. 자칫 한반도 통일의 기회가 중국과의 영토 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 2018년 문화일보에 썼던 북한 관련 칼럼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평양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북한의 환대에 취하거나 어설픈 중재역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9월 19일), “문 대통령과 현 집권세력은 북한만 바라보지 말고 좀 더 넓고 큰 틀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하기 바란다”(10월 31일). 당시 실세였던 임 전 실장은 환대에 취해 북한에 올인했던 결과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먼저 답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평화 담론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도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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