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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요한은 '백설공주~' 촬영장서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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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요한은 '백설공주~' 촬영장서 '입'을 닫았다

입력
2024.10.09 08:00
수정
2024.10.09 11:00
23면
0 0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 입소문 주역
살인 누명 쓰고 10년 복역 후 범인 역추적
"고구마 전개요? 우리 인생이 '고구마' 아닌가요?"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 속 변요한의 모습.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그의 얼굴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MBC 방송 캡처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 속 변요한의 모습.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그의 얼굴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MBC 방송 캡처

대입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이틀 뒤. 술을 마시고 잠든 예비 의대생의 방으로 경찰이 들이닥쳤다. 긴급체포 이유는 살인 혐의. 자다가 날벼락 같은 일을 당한 소년은 어안이 벙벙해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한 채 끌려갔다.

"삼촌!" 집 밖에서 대기하던 경찰차 앞에 경찰 서장이자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서 있는 걸 본 청년은 이렇게 소리쳤다.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겁에 확 질린 표정이었다. MBC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블랙아웃' 속 고정우를 연기한 변요한(38)의 모습이다. 변영주 감독은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으로 이 장면을 꼽았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모르는 어벙한 모습으로 변요한이 난리 치지 않고 사건의 시작을 잘 열어 줬다"는 게 변 감독의 말이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속 변요한의 모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속 변요한의 모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명확한 증거 없이 살인범이 된 주인공 정우가 감옥에서 10년 동안 복역한 뒤 나와 범인을 역추적하는 드라마다. 하지만, 세상은 살인범으로 지목된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제작진에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동료 배우들과 활발한 소통으로 유명한 그는 이 촬영장에선 '입'을 닫았다.

"9회부터는 정우의 말이 더 없어지잖아요. 정우가 목소리를 낼 때마다 돌아오는 건 주위 사람들의 무시였으니까요. 점점 힘을 잃고 말도 잃어가죠. 주위 사람들한테 하는 말이라곤 '감사합니다' 정도였고요. 정우의 무기력함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어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일부러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어요. 극중 아버지들한테 맞는 장면이나 죽은 보영이를 발견했을 땐 너무 힘들었는지 과호흡이 오더라고요. (촬영장에 비치된 산소통에서) 산소를 마신 뒤 촬영하기도 했죠." 드라마 종방 후 8일 서울 강남구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난 변요한의 말이다.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불랙아웃'에 출연한 변요한은 8일 "정우가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을 복역하면서 19세 때 즐겨야 할 우정을 놓치고 산 게 제일 안타깝다"고 말했다. 팀호프 제공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불랙아웃'에 출연한 변요한은 8일 "정우가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을 복역하면서 19세 때 즐겨야 할 우정을 놓치고 산 게 제일 안타깝다"고 말했다. 팀호프 제공


"인생이 어떻게 '사이다'겠어요"

이 드라마는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쉬 풀지 않는다. 방송 초반 "고구마 전개"란 지적을 받은 배경이다. 살인 사건에 은폐된 비밀을 그물망처럼 엮어 정우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추악함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드라마는 중반 이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 8월 2%대로 출발했던 시청률은 이달 4일 마지막 회에서 8%대로 껑충 뛰었다. "인생이 어떻게 '사이다'겠어요. 우리 다 '고구마 인생' 아닌가요? 시청자분들이 그걸 공감해 주고 그래서 더 응원해 주신 것 같아요."

독일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지난 2022년 촬영이 끝났다. 그 후 2년여 동안 방송사 편성 등을 잡지 못하고 '창고'에서 묵었다. 그는 왜 이 드라마 출연을 결정했을까. '책임감'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대본을 받았을 때 어떤 사회적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어요. 제가 딱히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TV를 끄면 그냥 외면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약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잖아요. 그때 대본을 보고 '이 드라마가 작은 불씨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변요한의 모습. tvN 제공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변요한의 모습. tvN 제공


정우처럼 변요한이 겪은 '블랙아웃'

변요한은 드라마 속 정우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 좀처럼 배역과 분리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부제이자 정우가 겪은 '블랙아웃'처럼 변요한도 눈앞이 캄캄해진 위기를 겪었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2015~2016)에서 이방지 역을 맡아 주목받은 그는 2년여 동안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다. 독립 영화를 100편 넘게 찍고 닥치는 대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몸이 무너졌다. 드라마 '미생'(2014)의 성공 후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은 그를 옥좼다. 어느 순간, 그는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 늪에서 변요한을 꺼내 준 이는 김은숙 작가였다. 김은숙은 변요한을 따로 불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을 "같이 해 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첫 촬영이 끝난 후 집에 가는 길, 그는 눈물을 흘렸다. 연기하는 기쁨에 대한 감사함이 밀려왔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속 변요한의 모습. SBS 제공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속 변요한의 모습. SBS 제공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 정우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건 그가 가장 사랑하고 따랐던 마을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버림받은 정우처럼 변요한도 데뷔 초 설 곳이 없었다. "오디션에서 너무 많이 낙방했어요. 제 삶이 (오디션에서) 들러리가 된 기분이었죠. 그래서 '미생' 오디션 때도 '연기해 보라'는 제작진 말에 '안 하겠다'고 했고요. 세상에 반항심이 있었죠." 그가 '미생' 방송 후 찍은 드라마 '구여친클럽'은 조기 종방했다. tvN 개국 이래 첫 조기 종방 작품이었다.

드라마 '미생' 속 변요한의 모습. tvN 제공

드라마 '미생' 속 변요한의 모습. tvN 제공

이런 '흑역사'를 딛고 변요한은 영화 '자산어보'(2021)와 '한산: 용의 출연'(2022) 등을 찍으며 연기의 보폭을 넓혔다. 그의 출연작 중 올해 공개된 작품은 드라마 '삼식이 삼촌'을 비롯해 영화 '그녀는 죽었다' 등 세 편.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후 투자가 꽁꽁 얼어붙은 K콘텐츠 시장에서 변요한에겐 대본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선과 악, 반항과 순응이 묘하게 교차하는 얼굴"(봉준호 감독)이 배우로서 그의 무기였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통해 변요한은 '비움의 중요성'을 배웠다. "배우로서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어요. 작품 안에서 언제든지 변하면서 배우로서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영화 '자산어보' 속 변요한의 모습. 플러스엠 제공

영화 '자산어보' 속 변요한의 모습. 플러스엠 제공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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