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윌과 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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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2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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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30년가량 됐다. 서로 속속들이 아는 친구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상상하지도 못한 이메일을 받는다. 친구는 예순으로 향해 가는 나이에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한다. 커밍아웃 당사자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쳐야 하지만 주변 사람이라고 간단한 일은 아니다. 남성으로 대하던 지인을 하루아침에 여성으로 마주해야 하니까. 2021년 미국 유명 코미디언 배우 윌 패럴이 겪은 일이다.
①여성으로서는 낯설기만 한 세상
패럴은 1995년 코미디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 출연하며 방송작가 앤드루 스틸을 처음 만났다. 패럴이 SNL을 떠난 뒤에도 둘의 우정은 지속됐다. 둘은 서로에게 절친 중의 절친이었다. 스틸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성전환을 선언했다. 패럴은 팬데믹이 끝나자 오랜 친구를 만났다. 앤드루 스틸은 하퍼 스틸로 바뀌어 있었다.
스틸의 취미는 미국 구석구석 여행이었다. 운전을 하다가 마음 내키는 술집에 들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식으로 발길 닿는 대로 다니길 좋아했다. 여성이 되니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일이 됐다. 패럴은 새 삶의 여정에 오른 친구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친구를 제대로 알고 싶기도 했다. 둘은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미국 횡단 자동차 여행에 나선다.
②길에서 만난 미국이라는 나라
여행길은 일단 유쾌하다. 둘은 차 안에서 수다를 떨다가 마음 내키는 곳에 차를 세우고 간이의자에 앉아 캔맥주를 딴다. 패럴은 스틸이 여성이 된 이후 처음으로 프로농구 경기를 보러 갈 수 있도록 함께하고, 텍사스주의 요란스러운 스테이크집에서 쇠고기 많이 먹기 도전에 같이 나서기도 한다. 스틸은 마초들이 득시글한 술집에 혼자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기분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패럴과 스틸의 여정에는 악플이 뒤따르고는 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나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는 걸 두 사람을 향한 사람들의 욕설과 야유에서 알 수 있다. 패럴과 스틸이 동에서 서로 이동하며 마주하는 풍경과 사람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현실을 보여준다.
③인간에게 우정이 필요한 이유
다큐멘터리는 종종 웃기고 자주 따스하며 간혹 서글프다. 패럴이 엉뚱한 행동과 말로 미소 짓게 하는 장면이 많다. 상영시간 114분을 지배하는 정서는 든든한 우정이다.
패럴은 오랜 친구가 여성이 됐다는 말을 듣고선 배신감을 느끼기는커녕 걱정부터 한다. 40년가량 정체성을 고민했을 친구의 고통을 돌아보고, 친구의 새 삶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두 사람의 상황은 로스앤젤레스(패럴 거주지)와 뉴욕(스틸 거주지) 기후만큼 달라졌어도 우정은 지속가능하다. 패럴과 스틸은 17일 만에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다. 스틸은 뉴욕으로 홀로 돌아가야 한다. 패럴이 꺼내는 말은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웅변한다.
뷰+포인트
다큐멘터리의 기획자는 패럴이나 다름없다. 친구 스틸에게 여행을 제안했으니까. 그는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해 영상화에 힘을 쏟았다. 패럴과 스틸의 특별한 여행은 소수자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 스틸은 패럴에게 40년 동안 자신이 겪은 일들을 토로한다. 홀로 여행할 때 차 안에서는 치마를 입고 있다가 교통경찰 단속에 걸리면 들킬까 마음 졸였다는 사연 등이 소수자의 고단한 삶을 대변한다. 스틸이 성전환을 알렸을 때 누나(언니)가 내놓은 반응은 특별하다.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잘됐다.” 여러모로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99%, 시청자 84%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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