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밖으로 나온 각국 인간형 로봇들]
노르웨이 '네오', 빨래 개고 유리잔도 옮겨
미국 '디지트', 물류기업 창고서 상자 운반
중국 'GR-2', 물체 맞춰 실시간 힘 조절도
가성비, 안정적·일관적 작업 능력 갖춰야
편집자주
로봇은 인간을 얼마만큼 닮을 수 있을까. 한국일보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국제제어로봇시스템학회를 찾아 로봇 기술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인공지능을 만난 휴머노이드 로봇의 미래를 진단한다.
소파에 앉아 신발끈을 묶던 여성이 고개를 돌려 휴머노이드를 바라본다. 여성이 말을 건네자 휴머노이드는 바닥에 놓인 가방을 집어들어 여성에게 건넨다.
지난 8월 31일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 '네오'(NEO)의 홍보 영상 속 장면이다. 노르웨이 기업 1X테크놀로지스가 개발한 가정용 로봇 네오는 키 160㎝, 무게 약 30㎏으로 성인 여성보다 왜소하지만 20㎏ 정도의 짐은 너끈히 들 수 있다. 특히 인간을 닮은 손가락이 장점이다. 빨래를 개거나 유리잔을 옮기는 섬세한 일도 할 수 있다. 1X는 올 연말에 네오를 일부 가정에 시범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상용화 전 ‘실전 경험’을 쌓으려는 것이다.
사람이 연기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휴머노이드가 최근 1년 새 쏟아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전에 힘입어 사람의 행동과 언어를 학습한 로봇들이 연구실 밖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은 휴머노이드 개발을 국가가 나서서 추진하거나, 실제 산업 현장에 투입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 공장선 이미 휴머노이드가 일꾼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한 건 미국이다. 세계 최고의 AI 기술력으로 로봇의 두뇌를 빠르게 진화시킨 덕분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자동화를 위해 휴머노이드 제조기업들과 손을 잡으면서 탄탄한 생태계가 생긴 것도 주요 요인이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테슬라의 ‘옵티머스2’는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공장용 휴머노이드로 개발된 옵티머스2는 키 172㎝, 무게 56㎏으로 성인 남성과 비슷한 크기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차 기술에 기반한 고급 센서와 카메라 시스템으로 환경을 인식한다. 홍보 영상에서 옵티머스2가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옮기는 장면이 화제가 됐는데, 모든 손가락에 센서가 달린 덕분이다. 이미 지난 6월부터 옵티머스2 두 대가 테슬라 자동차 공장에 투입돼 배터리 셀을 분류해 배송 컨테이너에 수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년에는 최소 1,000대를 투입하고, 외부 고객에게도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애질리티로보틱스가 개발한 ‘디지트(Digit)’는 미국 최초의 대량 양산형 휴머노이드다. 이족보행을 하고 팔로 물건을 옮기는 등 반복 작업에 최적화했다. 디지트는 지난해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시범 운행됐고, 올해 물류기업 GXO의 일부 창고에 투입돼 의류상자 운반을 하고 있다. 애질리티로보틱스는 자체 공장 ‘로보팹’에서 최대 1만 대의 디지트를 양산할 수 있으며, 내년부터 기업은 물론 일반 고객에게도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격은 2만5,000달러(약 3,360만 원)다.
중국, 정부가 휴머노이드 생태계 지원
중국의 휴머노이드 기술은 미국을 어느새 바짝 추격해왔다. 정부가 나서서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주요 도시에 휴머노이드 생태계 구축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국 내에서 부품을 자급할 수 있다는 장점에 힘입어 저렴한 휴머노이드를 선보이고 있다.
유니트리가 최근 발표한 ‘G1’이 대표적이다. 키 130㎝, 무게 35㎏의 G1은 두 팔과 두 다리를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산업용 휴머노이드다. 물건 운반은 물론 병뚜껑을 열거나 용접을 하는 등의 섬세한 작업도 가능하다. 가격은 1만6,000달러(약 2,154만 원). 디지트보다 움직임이 다양한데도 1,000만 원 더 싸다.
중국 기업들이 가성비만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푸리에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GR-2'는 손에 6개의 촉각 센서와 동작 제어 알고리즘을 장착해 물체의 모양과 재료에 따라 힘을 실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다. 푸리에가 개발자들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를 공개한 것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사용자의 필요에 맞춰 GR-2를 최적화할 수 있는 것이다. 푸리에 창업자 구지에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값싸고 공중제비를 하는 로봇이 아닌,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작업하는 로봇"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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