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부터 옛날국수 생산한 동명식품
경상도서 소문난 국수, 알아챈 오뚜기
오뚜기, 회사 고비 때마다 도우미 역할
국수 14종 만들어, 전체의 40% 생산 담당
편집자주
세계 모든 기업에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는 어느덧 피할 수 없는 필수 덕목이 됐습니다. 한국일보가 후원하는 대한민국 대표 클린리더스 클럽 기업들의 다양한 ESG 활동을 심도 있게 소개합니다.
10일 오전 경남 산청군 대전통영고속도로 산청IC 톨게이트에서 빠져 차로 5분 정도 달리자 나온 동명식품에는 노란색 바탕에 '오뚜기 옛날국수'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이 놓여 있었다. 멀리서도 훤히 보이는 옛날국수 로고만 보면 여기를 오뚜기가 소유한 공장으로 착각할 법했다. 50년 역사 중 20년 넘는 기간을 오뚜기와 관계없이 스스로 성장한 동명식품. 지금은 간판을 내걸은 데서 알 수 있듯 오뚜기와 뗄 수 없는 짝꿍이다.
동명식품은 오뚜기의 국수 브랜드 옛날국수를 29년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하고 있는 중소 협력사다. 이날 동명식품 본사에서 만난 박철진(56) 대표가 이 회사에서 일한 지도 딱 29년째다.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그는 수험 생활을 접고 1996년 동명식품에 합류했다. 아버지이자 동명식품 창업주인 박재동 회장이 "오뚜기와 OEM 계약을 맺었으니 젊은 네가 도와야겠다"고 연락을 하자 달려왔다. 그 후로 승부처, 고비 등 결정적 장면마다 동명식품과 박 대표 곁엔 오뚜기가 있었다.
동명식품은 박 회장이 1974년 세운 동명상회에서 출발한다. 경남 진주시에 문을 연 동명상회는 국수 생산과 서부 경남권 슈퍼마켓에 식품을 공급하는 유통업을 겸했다. 1970년대 밀가루 섭취를 장려하는 혼분식 정책에 밀가루를 찾는 수요가 늘자 국수를 주력으로 삼았다. 당시 미군에서 보급받은 밀가루를 진주 사람들이 국수로 만들어달라며 몰려들기도 했다.
박 대표는 어릴 적 아버지가 아침이면 날씨 걱정을 했다고 떠올렸다. 기계에서 뽑은 국수를 야외에서 말렸는데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모두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날씨에 일희일비했던 동명상회는 1984년 결단을 내렸다. 일본의 면 생산 업체인 스즈키 면공에서 값비싼 기계를 사들이고 실내 건조 시설을 만드는 등 번듯한 국수 공장 구색을 갖췄다. 여기서 생산한 자체 국수 제품 '코끼리표 국수'는 품질 좋기로 소문났다. 이 과정에서 이름도 식품 회사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 동명식품으로 바꿨다.
오뚜기와 계약에, 외환위기 돌파
이는 1996년 오뚜기와 OEM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됐다. 오뚜기는 1986년 외면받는 전통식품을 되살리겠다는 생각 아래 당면을 앞세워 '옛날' 브랜드를 만들었고 1990년 제품군을 국수로 넓혔다. OEM 방식으로 만들던 옛날국수는 판매량이 생산 물량을 앞지를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옛날국수 OEM 업체를 세 곳에서 더 늘리기로 한 오뚜기 제품 개발팀 눈에 들어온 곳이 동명식품이었다. 자동화 설비를 갖춘 동시에 고품질 제품을 만드는 생산 능력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OEM 계약은 동명식품에 큰 기회였다. 자체 상품 생산을 멈추고 오뚜기 옛날국수만 뽑기 시작한 동명식품은 체계적 회사로 거듭났다. 단순히 오뚜기라는 안정적 거래처를 확보한 데서 그치지 않고 품질 관리법을 배웠다. 완성품 상태만 보고 제품화를 결정했던 과거와 달리 숙성 온도·시간, 반죽 정도 등 모든 국수 제조 공정을 살펴보면서 수치화, 계량화했다. 옛날국수가 추구하는 담백·구수한 맛, 쫄깃쫄깃하면서 부드럽고 잘 퍼지지 않는 면발을 365일 일정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1996년 16억6,700만 원이었던 동명식품 매출은 1998년 외환위기에 굴하지 않고 37억 원까지 뛰면서 안착했다. 2004년 산청군으로 회사를 옮긴 동명식품은 생산 능력을 두 배로 키우면서 승부수를 띄웠다. 그런데 오작동을 일으킨 일부 국수 생산 설비가 말썽이었다. 설비 재투자를 위해 정책 자금을 빌린 동명식품은 회사 이전에 따른 대출도 남아 있던 터라 자금 압박을 받았다. 박 대표는 이때 동명식품을 믿고 기존 주문을 유지한 데 더해 신제품 출시까지 맡긴 오뚜기가 있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협력사 넘어 파트너로
동명식품은 2018년에 다른 고비를 맞았다. 10여 년 전 빌렸던 대출을 갚을 시기가 다가와 목돈이 필요했던 것. 오뚜기가 이번에도 도우미 역할을 했다. 동명식품은 오뚜기가 마련한 동반 성장 펀드를 통해 15억 원을 금리 1.5%에 빌려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동명식품에 담보도 요구하지 않은 파격 조건이었다.
오뚜기와 동명식품과의 관계는 협력업체를 넘어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일본 출장을 다녀온 후 면을 육수에 적셔 먹는 '츠케멘' 개발을 주문해 함께 만든 게 대표적이다. 또 동명식품은 오뚜기가 본사 직원 등을 대상으로 매년 말 여는 '분임조 경진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비용 절감, 제품 혁신 등 회사 개선책을 직원 스스로 찾는 이 대회에서 동명식품은 불량 제품 감소 방안으로 상을 타기도 했다.
오뚜기와 동행하고 있는 동명식품 매출액은 2005년 100억 원, 2022년 200억 원을 돌파하고 2023년엔 236억 원을 기록했다. 오뚜기에 납품하는 국수 종류는 옛날국수, 칼국수, 소면, 중면 등 14종이다.
박 대표는 "오뚜기와 함께하면서 더 성장하겠다는 꿈을 가졌다"며 "고객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오뚜기의 원칙을 실천하기 위해 전 직원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중소 협력사 지원은 경영 컨설팅, 제품·원료 분석, 현금 결제, 명절 하도급대금 조기 지급, 우수 협력사 인센티브 등 다양하다"며 "오뚜기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 제품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중소 협력사와 상생·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