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중 폭행·폭언 일삼아…2년 만에 이혼
"남자친구 생기자 배신감"…살인 혐의 등
임신 7개월… “몰랐다” 심신미약 주장
1심 “계획 범행, 수법 잔인” 징역 40년 선고
지난 3월 28일 오전 10시 30분쯤 전북 전주의 한 미용실. 30대 여성 원장은 평소처럼 가게 문을 열고 손님맞이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평온했던 일상이 깨진 건 불청객이 들이닥치면서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성은 다짜고짜 이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불의의 습격으로 여성은 순식간에 고꾸라졌고, 미용실 바닥은 피바다가 됐다.
전남편 B(44)씨에게 살해당한 A(39)씨의 이야기다. 그의 뱃속엔 7개월 된 태아가 있었다. A씨가 이혼 후 만난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생긴 새 생명이었다. 긴급 수술로 석 달 일찍 세상에 나온 이 아이마저 19일 만에 숨을 거뒀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순탄치 않던 결혼 생활
19일 경찰·검찰 등에 따르면 A씨 부부 사이엔 딸이 하나 있었으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B씨는 거의 직업이 없었고 건강도 좋지 않아 큰 수술도 받았다. A씨는 B씨가 회복할 때까지 성심껏 간호했고 생계도 책임졌다. 생활비가 없어 대출을 받았을 땐 A씨가 원금과 이자를 홀로 갚았다. 하지만 A씨에게 돌아온 건 B씨의 폭언과 폭행이었다.
B씨는 결혼 내내 A씨를 손찌검하고 위협했다고 한다. 이에 A씨는 B씨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B씨는 수시로 말을 바꾸며 시간을 끌었다. 참다못한 A씨는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B씨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A씨는 유일하게 친언니에게만 B씨의 만행을 털어놨다. B씨에게 폭행당해 얼굴과 목에 난 상처를 찍은 사진과 그가 보낸 욕설과 협박성 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결국 두 사람은 지난해 1월 19일 갈라섰다. 결혼한 지 2년 만이었다. B씨가 딸을 키우고, A씨가 양육비를 대는 조건으로 이혼한 것이다.
이혼 후에도 괴롭힘 지속
하지만 A씨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B씨는 A씨 미용실에 불쑥불쑥 찾아와 돈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렸다. “머리 좀 잘라 달라”고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발비는커녕 돈통에서 현금을 마음대로 가져갔다. 수시로 전화하고 미용실 주변을 서성거리는 B씨 때문에 A씨는 가게에 폐쇄회로(CC)TV를 달아야 했다.
B씨의 괴롭힘은 A씨가 새 인연을 찾으면서 더욱 심해졌다. B씨는 끊임없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A씨는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 달라”고 사정했지만, B씨는 딸을 볼모 삼아 연락을 끊지 않았다. B씨는 A씨에게 1,0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지난 2월 28일 ‘앞으로 ○○○(A씨 이름)을 찾아가거나 연락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썼다. 하지만 B씨는 사흘 뒤 “딸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며 또다시 A씨를 강제로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갔다. 별일은 없었지만 A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를 알게 된 A씨 친언니는 “당장 B씨를 경찰에 신고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A씨는 “딸아이 아빠라 그럴 순 없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도 불안했던 A씨는 언니에게 ‘내가 잘못되면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당부와 함께 자신이 묻힐 곳과 입관 방법 등을 알려줬다.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았다. 20일 뒤 B씨는 예고 없이 A씨를 찾아왔다.
흉기 손잡이에 붕대 감아… 범행 직후 도주
미용실에 들어온 B씨 허리춤에는 흉기가 꽂혀 있었다. B씨는 A씨를 보자마자 얼굴을 수차례 때렸다. A씨는 죽을힘을 다해 B씨의 흉기를 빼앗았다. 당시 A씨는 만삭이었다. C(43)씨의 아이였다. 옆에 있던 C씨가 B씨를 붙잡으면서 두 남자 간 몸싸움으로 번졌다.
A씨는 B씨를 향해 가스총을 쐈다. 이런 날을 대비해 준비해 둔 호신용 장비였다. 하지만 가스총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사이 B씨는 A씨가 소파 뒤에 숨긴 흉기를 찾아내 A씨에게 사정없이 휘둘렀다. 흉기의 손잡이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이에 C씨가 B씨에게 달려들었으나 B씨 흉기에 머리를 찔렸다. 이후 B씨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A씨에게 다가가 목과 배를 흉기로 3차례 더 찌른 뒤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
그러나 C씨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도주 1시간 만에 김제에서 붙잡혔다. 당시 B씨는 자신의 목에 자해 행위를 한 상태였다. 긴급 수술을 받은 B씨는 닷새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1심 징역 40년… "19일 만에 아이도 사망"
B씨 흉기에 찔린 A씨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응급 수술을 받고 세상에 나온 A씨 아이도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다 19일 만에 엄마 곁으로 갔다.
B씨는 경찰에서 “A씨가 C씨와 교제를 시작한 것에 대한 배신감과 나와 낳은 딸 양육에 소홀해진 것에 대한 불만을 품고 두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A씨 언니는 탄원서를 통해 “동생은 주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부당한 일에 휘말리면 먼저 나서서 해결해주고, 소외된 사람을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이었다”며 “그런 제 동생이 처절한 고통 속에서 죽었다. B씨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법이 할 수 있는 최고 형량을 내려 달라”고 법원에 호소했다.
지난 5월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법정에 선 B씨는 범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A씨가 임신한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범행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등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병원 진단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반성문도 9차례 냈다.
그러나 법원은 B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 김도형)는 지난달 26일 “범행 전후 피고인(B씨)의 행동과 감정 상태, 우울 증상 정도, 국립법무병원의 정신 감정 결과에 의하면 우울 장애는 앓고 있지 않았고, 사전에 범행 도구와 시기를 계획해 범행한 점에 비춰 볼 때 심신 상태가 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5년간 보호관찰 명령도 내렸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흉기 손잡이에 미리 붕대를 감고 범행 후 미용실에 불을 지르려고 라이터와 기름통 등을 준비한 점 △이미 쓰러진 피해자의 중요 부위를 수차례 찔러 확실하게 살해하려고 한 점 등을 들며 “범행 수법이 잔혹하다”고 지적했다.
전자발찌 부착 명령은 기각, 왜
앞서 검찰은 “재범 위험성이 있다”며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B씨의 범행 동기나 원인 등에 비춰 볼 때 장래에 다시 살인을 저지를 만한 성향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김 부장판사는 “장기간의 징역형의 집행, 보호관찰 명령과 준수 사항 부과를 통해 재범을 방지하고 성행(성격·행동)을 교정하는 효과를 어느 정도 거둘 수 있을 걸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A씨의 유가족과 C씨에게 어떠한 방법으로도 연락하거나 접근하지 말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상담·진료를 받으라고 주문했다.
B씨는 선고 이튿날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도 항소했다. B씨의 형량은 항소심 재판부가 다시 판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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