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 의료 의사 늘수록 사망률 감소
일차 의료기관부터 질병 예방·건강증진 관리해야
2022년 한국의 경상의료비(국민이 쓴 의료비 총액)는 209조 원이다. 국내총생산(GDP)의 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경상의료비 비율은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경상의료비 비율이 GDP 대비 10%를 넘어서면 교육과 국방, 복지, 연구, 산업 등에 투입되는 예산을 줄이거나,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를 대폭 올려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경상의료비 비율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면 어떻게 될까. 제한된 예산으로 늘어난 비용을 감내하려면 결국 의료서비스 공급을 줄여야 한다. 이럴 경우 진료를 받기 위한 대기 일수가 늘어나거나 공공의료를 통한 의료서비스가 제한될 수 있다.
이런 원치 않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의료서비스에 적정 수가를 지불하고, 힘들어 기피하는 필수의료 영역의 전문의에게 더 많은 보상을 줘 인력을 양성하면 필수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다만 비용이 문제다.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해 필수의료 수요를 줄이는 방안도 병행해보면 어떨까. 우리나라 일차 의료 현장에는 질병 예방을 위한 진료가 충분히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현재의 의료 체계에선 의사의 진료 시간이 제한적이고, 질병 예방을 위한 상담이나 환자 교육에 별도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검사나 약물 처방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80.9%를 차지한다. 2019년 70조 원에서 2020년 71조 원→2021년 78조 원→2022년 83조 원으로 급증 추세다. 아플 때 가장 먼저 만나고, 지속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차 의료 의사가 질병 치료뿐 아니라 예방접종과 정기검진‧금연‧절주‧체중 조절‧스트레스 관리 등 건강증진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만성질환과 그로 인한 중증질환 발생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국민건강수준을 높여 의료비 역시 큰 폭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진료를 하는 주치의가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료 체계에서는 응급실 방문‧입원‧수술 횟수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여럿이다. 서울대 연구팀이 정부의 '제5차 국민보건의료 실태조사'를 활용해 일차 의료 의사 수가 국민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인구 10만 명당 일차 의료 의사가 한 명 증가할 경우 전체 사망률이 0.11%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해당 의사의 공급이 늘수록 심혈관질환과 호흡기질환 등에 의한 사망률도 감소했다.
이제는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일차 병원 진료실에서 예방을 통해 질병 발생을 줄이고 의료비 증가도 줄여나가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의과대학과 학회, 병원은 아플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일차 의료 의사 양성에 힘써야 한다. 이들이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교육과 수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보건 당국은 질병 예방 진료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 예방 중심의 진료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환자도 검사나 투약만이 의료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예방적 상담과 교육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모든 국민이 더 건강해지고, 의료비 절감까지 이루어진다면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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