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균 1만4254건… 文 땐 6648건 그쳐
일부 은행은 정권교체 직후 10배 폭증해
"야당 정치인 공격하기 위해 악용" 우려
천준호 "검사 출신 이력 영향… 개선 추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체제에서 영장 없이 집행되는 '계좌추적'(금융거래정보 요구) 규모가 문재인 정부 시절 대비 연평균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부장검사 출신으로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불렸던 이 원장 취임 후 계좌추적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사실로 일부 확인된 셈이다. 금감원은 국회의 지속적인 개선요구에도 불구, 계좌소유주에게 통보하지 않는 '깜깜이 계좌추적'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시중은행을 포함한 10개 금융회사(국민·신한·하나·농협·카카오·토스·케이뱅크·SC제일·시티·신협)로부터 최근 5년간 금감원이 요구한 금융거래정보 통계 자료를 취합한 결과, 윤석열 정부(2022년 6월~2024년 6월) 기간 2만8,507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1만4,254건을 요구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6,648건) 대비 2.14배 많은 규모다. 일부 은행의 경우 정권 교체 직후인 2022년 하반기 건수가 같은 해 전반기 대비 10배 이상 폭증하기도 했다. 금융위원회와 합산하지 않고 금감원의 계좌추적 규모만 따로 공개된 건 처음이다.
실제 금감원이 들여다본 계좌수·명의자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수치는 금감원이 금융회사에 '공문을 보낸 건수'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금융거래정보 제공 통계관리지침'은 '요구건수는 제출명령, 영장, 정보제공요구서 1장당 1건으로 산정한다'고 규정했다. 금감원이 계좌를 요구하는 대상이 10명이든 100명이든 통계적으로는 1건이라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급증한 금감원의 계좌추적이 법원의 영장 없이 이뤄질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계좌소유주에게 통보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금융계좌정보가 금감원에 제공된 사실을 알 수 없다는 얘기다. 한 변호사는 "수사의 밀행성이 요청되는 검찰조차도 소유주에게 통보를 하고 있는데, 금감원이 통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이에 금감원의 권한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라임·옵티머스 사건 관련 주요 투자자와 피해 운용사 자료를 발표하면서 '다선 국회의원에게 2억 원을 특혜성 환매해줬다'고 적시했다. 발표 직후 당사자를 김상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특정하는 보도가 나왔는데 금감원이 이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사실로 간주됐다. 하지만 금감원은 환매 과정에서 판매 증권사의 부실을 발견했을 뿐, 김 전 의원에 대한 '특혜성 환매' 의혹 자체는 입증하지 못했다. 김 전 의원은 통화에서 "이 원장이 자신이 가진 권한을 야당 정치인을 공격하기 위해 악용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이 원장에 대한 민·형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금감원은 제도개선에 미온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해 금감원에 "계좌추적에 대한 영장주의, 국회 보고와 명의인 통보제도를 도입하라"고 시정요청했으나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비용·업무부담, 금감원 조사의 밀행성' 등을 사유로 영장주의 적용과 통보제도 도입을 거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 원장 취임 이후 계좌추적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금융사고 등 이슈가 많으면 그에 따라 늘어날 뿐 정권교체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천 의원은 "윤석열 사단 검찰 출신이라는 이 원장의 이력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무분별한 계좌추적으로부터 국민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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