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 번역은 기계적인 ‘변환’이 아니라 문화적인 ‘해석’
이 코너에 게재해 온 칼럼이 2022년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그 책이 이번에 일본어로 번역, 일본에서도 출간됐다. 한국 독자들에게 일본 사회, 일본 문화를 해설한 칼럼이 일본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일본 독자들의 반응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만큼, 이번 칼럼에서는 내가 독자가 되어본 특별한 감상을 소개할까 한다. 사적인 소회를 늘어놓는 데는 서투르지만, 다른 사람이 번역한 내 글을 읽으며 한일 간 번역의 언어적, 문화적 묘미를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한국어와 일본어는 둘 다 익숙한 언어다. 모국어인 한국어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어도 큰 무리 없이 읽고 쓸 수 있다. 이전에도 일본어로 집필한 원고로 일본에서 책을 낸 경험이 있다. 자기 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경우는 적지 않겠지만, 번역된 글을 순수한 독자의 입장에서 읽는 기회는 흔치 않을 듯하다. 사려 깊은 번역가의 손을 거친 내 글을 읽는 것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마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또 다른 글쓴이를 조우한 듯 반갑기도 하고, 서투른 나의 문장이 돌연 수려한 문장으로 변신한 듯 어색하기도 했다.
나 역시 번역 경험이 있다. 일본어를 한국어로, 혹은 그 반대로도 번역해 보았다. 진지한 번역이 얼마나 깊은 사색과 수고를 요구하는 작업인지 잘 안다. 문장을 그저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원문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회에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은 기계적인 ‘변환’이 아니라 문화적인 ‘해석’이다. 인공지능의 힘을 빈 자동 번역이 사색과 문장력을 갖춘 번역자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굳게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한일 간 번역에는 대체불가의 묘미가 있다
한일 간의 번역 작업은 실로 묘미가 있다. 특히 이번에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글은 신문 독자를 위한 대중적인 글이었다. 종종 유행어나 은어 등을 섞어 재미를 더한 글이어서, 어떻게 번역이 될지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어의 속어가 일본어로 자연스럽게 변환돼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인싸’라는 말이 있다. ‘인사이더(insider)’라는 영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모임이나 집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잘 어울리는 사람을 뜻하는 속어다. 이 단어가 일본어 번역본에서는 ‘요우캬라(陽キャラ)’로 번역됐다. ‘요우캬라’란 ‘밝은 기운(陽気)의 캐릭터(キャラクター)’를 뜻하는 일본어 은어로, 밝고 사교적인 성격을 뜻한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양쪽 모두 인간관계와 사교성에 관한 속어로, 한일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이 많은 주제다.
‘꼰대’라는 단어도 그랬다.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는 연장자를 비꼬는 속어인데, 일본어 번역본에서는 ‘로가이(老害)’로 번역됐다. 고령자의 부정적인 행동을 비꼬는 단어인데, 일본에서도 나이 든 권력자가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 폐해에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은 만큼 ‘꼰대’와 정확하게 대응하는 개념이 존재했던 것이다. 정확하게 상응하는 단어가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번역본을 읽으며 한일 간 번역의 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문법과 단어 측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아서, 서로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일 간 번역의 묘미는 단순히 이런 언어적 유사성에 있지 않다. 두 사회가 당면한 사회문제나 문화적 딜레마가 비슷하기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정확히 대응되는 단어나 표현을 찾을 수 있다. 영어, 중국어 등 다른 언어로도 표현할 방법이 없지 않겠지만, 한일 간 번역에 있어서는 그런 표현들이 더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곤 한다.
그래서 한일 간 번역이 수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묘한 뉘앙스나 문화적 차이가 담긴 표현이나 관용어구는 더 세심한 해석을 요구한다. 표면적으로는 일치하는 단어들이 존재하지만, 그 단어들을 사회적 맥락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며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적 해석을 덧입히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다만 한일 두 사회와 문화를 양쪽 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훌륭한 번역가의 손을 거친다면, 그 어떤 언어의 번역본보다 메시지를 왜곡하지 않고 원글의 의도를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도 방언이 오키나와 방언으로 탈바꿈한 이유
일본에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독자가 많다. 최근 일본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고, 그중에서도 한강은 현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주목받아 왔다. 그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 등이 일찌감치 일본어로 번역돼 있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절판된 '가만 가만 부르는 노래'라는 작품은 이제 일본 번역본으로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뒤, 기쁨에 찬 일본 친구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힘 있지만 섬세한 한강의 글이 일본의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강 작품의 일본어 번역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올해 일본판이 출간됐는데, '82년생 김지영'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로 만든 베테랑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가 번역을 맡았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제주도 방언을 일본어로 옮기면서 오키나와 방언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오키나와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1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미군의 총알받이로 내몰려 희생된 비극적인 역사가 있다. 국가 폭력의 직접적인 피해를 당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배경인 제주와 역사적 경위가 유사하다. 즉, 일본에서 제주도와 유사한 비극을 경험한 오키나와 지역의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소설의 문제의식을 보다 선명하게 전달하려 했던 것이다.
번역가로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오키나와 방언은 그 자체로 그 지역의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 때문에 제주도를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 고유의 맥락에 집중하는 데에 방해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일부 독자들은 제주도 방언을 오키나와 방언으로 치환한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핵심 메시지는 국가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에 있다. 사이토의 번역은 단순히 제주 4·3 사건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일본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으며, 실은 지금도 여전히 국가에 의한 폭력 행위, 즉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그런 점에서 이 번역을 한일 간의 역사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시도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 번역과 문학을 매개로 하는 한일 문화 교류의 가능성
최근 일본에서 문학을 매개로 한 한일 문화 교류에서 뜻깊은 사건이 있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전권 번역 출간된 것이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광대한 서사를 다룬 대작을 일본의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지 않을까? 사려 깊은 번역이라는 문화적 도구를 활용한다면, 단순한 언어적 변환을 넘어 두 나라가 공유하는 역사적 갈등과 상처에 대한 유의미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다. 이번 출간이 한일 간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문학을 매개로 한 한일 문화 교류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
※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일본어 번역본 총 20권은 도서출판 쿠온에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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