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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북한이 참전, 전쟁의 화마가 동아시아에도 어른거리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18일 이례적으로 극비 정보를 공개해 북한의 행보를 경고했고, 국방부도 대북 확성기를 통해 북한군 파병 소식을 전송하는 등 심리전을 전개 중이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러-북 활동에 따른 유연한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북한군 2,000명이 러시아 서부로 이동 중인 정황 역시 보고됐다. 현 정세는 독재자 김정은과 침략자 푸틴이 만들어낸 파멸의 전주곡이 연주되는 형국으로, 6·25 전쟁 이후 가장 위험한 안보 상황이다.
서방 역시 기존 ‘신중한 행보’에서 ‘적극적 대응’으로 기조를 바꾸고 있다. 북한군 파병 소식이 알려진 직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사실이라면’이란 단서를 달아 우려를 표명했고,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도 지난 23일 “현재까지 우리의 공식 입장은 (북한군 파병) 확인 불가”라며 신중론을 폈다. 하지만 존 커비 미 백악관 국무 조정관이 3,000명의 북한군이 러시아에 배치되어 훈련 중이며 이들은 ‘공정한 표적’이라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바뀌었고, 오스틴 장관이 “대가를 치를 것”으로 경고하면서 구체화되고 있다. 영국의 존 힐리 국방장관도 “단순히 유럽 내 갈등 확산에 그치지 않으며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와도 분리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대북 강경 발언이 나온 24일 저녁 부산에 위치한 주한미군 제55보급창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서방의 주요 국가들이 북한군의 전쟁 개입을 공식 인정하면서, 유럽에서의 전쟁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탄약과 물자만 지원했던 서방으로선 ‘병력 파병’이라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힐리 장관의 경고는 나토 차원에서 전쟁 지속 역량을 섬멸하기 위한 북한 폭격의 필요성까지 경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경우, 나토의 중심국인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자동 참전해야 한다. 반대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도우면서 전쟁 양상이 유럽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확장될 수 있다.
러시아, 왜 북한에 도움을 요청했을까?
그런데, 세계 2위의 군사력을 자랑했던 러시아는 왜 북한에까지 손을 내밀었을까?
우크라이나 총참모부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2022년 1월 5,170명을 시작으로 2024년 10월 21일 현재 68만230명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동원된 보충병들은 훈련이 부족하여 적지 종심작전에 투입할 숙련병이 부족하다. 러시아군이 수적으로 우세한 쿠르스크 전선에서 힘을 못 쓰는 원인이기도 하다.
핵심 전장인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의 경우, 러시아군은 전선 돌파에 성공했지만 후속 충원 병력이 부족해 우크라이나군을 완전히 포위 섬멸하지 못했고, 돌파에 성공한 부대도 그대로 돈좌(頓挫)됐다. 또 러시아 유일의 기갑차량 생산공장인 ‘우랄바곤자보드’는 연 200대의 전차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 정도론 전선 수요량을 맞출 수 없다. 게다가 전차 및 장갑차는 이미 치장 물자(비축·저장 물자)까지 소모돼 신규 생산 및 수입 물량으로 근근이 버티는 중이다. 야포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나마 여력이 있는 방사포와 방공체계 역시 전체 전선을 유지하기엔 부족하다. 결국 러시아군은 병력 및 무기 재편성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타국의 지원이 절실했던 것이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러시아군은 최소 △보병 1개 사단 이상의 병력 △첩보 수집 능력을 갖춘 1개 여단 이상의 특수전 병력 △전차 2,000대 △장갑차 4,000대 이상 △야포 3,681문 이상이 필요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군의 파병 규모와 성격
국정원에 따르면, 그간 북러 간을 오간 화물 컨테이너의 양을 고려할 때 북한은 약 800만 발의 포탄과 불새-4 대전차 미사일, KN-23 등 단거리 탄도탄, RPG 로켓 등을 러시아에 공급했다. 이 정도 규모면 파병 북한군을 무장할 장비와 탄약은 충분해 보인다. 게다가 이번에 식별된 병력이 북한이 지원한 전력의 전부가 아닐 가능성도 높다.
현재까지 북한군은 우수리스크 등 6곳에서 식별됐다. 이 중 극동 하바롭스크 지역 훈련 전차연대에서는 북한군 240명이 훈련 중인 정황이 포착됐는데, 이는 2개 전차대대 규모다. 또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 사르타나 정착촌 근처에서는 포병을 동반한 3,000명 규모의 북한군이 보고됐다. 통상 북한의 특수작전군은 포병을 동반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특수작전군이 아닌 보병연대이며 본대에 앞서 도착한 선견대(先遣隊)로 분석된다. 러시아 서부 사라토프의 고등포병학교에서는 북한제 신형 자주포 M-2018 교육이 진행 중이며, 모스크바 남서쪽 브랸스크 및 오룔에서의 북한군 2,600명은 1개 경보병 여단으로 분석된다.
우수리스크 등 극동 지역에 분산 배치된 1만1,000명의 북한군은 보병사단 본대(9,000명)와 경보병 여단 1개 대대(2,000명)로 보인다. 왜 경보병으로 파악했을까? 북한 특수작전군은 11군단 직속 특수작전대대와 3개 저격여단, 9개 경보병 사단, 3개 항공육전여단, 각 2개씩의 공군 및 해상저격여단, 군단별 2개씩 복종 변경된 22개 경보병 여단 등 총 19만9,650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특수작전대대와 저격여단, 경보병 사단, 항공육전여단 등 6만가량의 병력은 한반도 내 중요 임무가 있어 활용할 수 없다. 즉 러시아에 보낼 수 있는 병력은 경보병 여단들이란 뜻이다. 그중 한국군과 대치 중인 병력을 제외하면 동부전선 후방 제10군단에서 1개 경보병 여단, 제7군단에서 1개 보병사단을 각각 차출했을 것이며 추가로 제12군단에서 1개 사단을 보충병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공교롭게도 북한군은 동부전선에서 대전차 방벽을 축성 중이다. 즉 파병 총규모는 예상보다 클 것이며 북한군은 독자적인 편제를 유지한 채 작전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군, 어떤 역할을 할까?
북한군의 투입 시기, 지역, 역할은 부대별로 다를 것이다. 먼저 경보병 여단의 경우 빠르면 11월 라스푸티차(봄가을에 토양이 진흙탕으로 변하는 현상) 시작 후 쿠르스크에서 적지종심작전(敵地縱深作戰)을 수행할 것이다. 보병사단의 경우, 러시아군 스톰-Z 전술 숙달과 부대 재편성에 시간이 더 필요해 경보병보다 투입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 예상 투입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크라스노봇스크 또는 포크로우스크 일대인데, 두 곳 모두 격전지다. 북한군의 교리적 행동을 고려하면 △경보병이 먼저 주요 목지점(Choke Point)을 점령하고 △2개 제대로 구성된 부대가 방어선을 돌파한 후 △우크라이나군을 포위·소멸하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드론 등 현대전에 익숙지 못한 북한군의 대규모 손실은 불가피하다.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은?
문제는 이들이 본국으로 생환할 경우다.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드론, 전자전이 난무하며 포병의 현대적 운용까지 배울 수 있는 살아있는 교범이다. 이 전쟁에서 북한군이 대규모 현대전을 경험한 후 귀환하면 군사 교리가 송두리째 바뀔 공산이 크다. 특히, 최근 전연 군단(조선 인민군 4개 군단) 예하에 다목적 무인기 대대가 신설됐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북한군은 유무인 복합 전투를 기반으로 상당히 발전할 것이다.
우리의 대응은?
우리는 대 우크라이나 지원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북한군을 최대한 소모시켜야 한다. 마침, 한국군엔 T-80U 전차, 무레나급 공기부양정 등 대러시아 제재로 부품 수급이 곤란해진 장비가 많다. 대부분 불곰사업(1995년부터 진행 중인 한국-러시아 간 군사 협력 사업)으로 도입한 장비다. 이런 구소련제 장비는 더는 우리 군에 쓸모없는 '골칫덩이'일 뿐이지만 우크라이나군엔 즉시 사용가능한 유용한 장비일 수 있다. 또 한국 군은 지원한 무기만큼 국산 신형 장비로 무장할 수 있고, 우리 군의 방산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덜 지원해도 되니 일석삼조다. 물론, 그 장비를 누구에게 쓸 것인가는 우크라이나군에 달렸다.
또 북한이 러시아에 KN-23을 공급해 실전 테스트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천궁-2 포대, K-9 자주포와 155㎜ 포탄, 천무 다련장 로켓, KTSSM-2 전술 탄도탄 등을 대량 공급해 실전 테스트 겸 데이터 수집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우리의 무기체계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 동시에 중동, 동유럽 등 잠재적 고객에 한국 방산 장비가 얼마나 우수한지, 전장에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지 등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지원 활동은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서 주도적 위치를 점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전략 광물 수급 다변화 전략도 시급하다. 북한의 참전으로 한-러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한국은 원전 발전에 필수적인 저농축 우라늄 수급량의 약 33%를 러시아의 우라늄 기업 테넥스(TENEX)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미국도 러시아로부터 구입 중인 실정이다. 우-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의 저농축 우라늄 수출 금지에 대비해 중국은 이미 카자흐스탄에서 생산되는 우라늄의 약 60%를 확보했다. 우리 역시 예상되는 충격파에 대비하기 위해 안정적인 우라늄 광물 자원 확보 계획을 짜야 한다. 필요하다면 저농축 우라늄 회사를 국내에 국영으로 설립해서라도 국내 원자력 생태계를 보존해야 한다.
자,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국력에 걸맞은 선진 강대국이 될 것인가? 눈치만 보는 3류 국가가 될 것인가? 후세는 우리의 선택을 평가할 것이다.
임철균 군사전략 연구가는?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육군3사관학교 학사(군사학) 국방대학교 석사(국방 전략학)를 마친 뒤 국방대 박사과정(군사 전략학)을 수료 중이다. 육군 참모총장 표창(비대칭 전략에 대한 대응방안 연구ㆍ2016년), 미래혁신단장상(하이브리드전(戰) 군 구조에 따른 ‘합동전술대대’ 제안) 등을 수상했다.
YTNㆍ채널A 등 방송에 군사전문가 패널로 출연해 북한군의 전력, 현대화ㆍ미래전 연구 등 북한의 군사 관련 정보를 일반 대중에 알기 쉽고 정확하게 제공하고 있으며 각 군 및 특전사, 교육기관 등에서도 강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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