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수심위 참여 속앓이 어땠을지
소집 여부도, 의견 수용도 검찰 뜻대로
왜 수심위 필요한지 납득되는 설명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위원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선뜻 내키지 않았다. 평소 심판자여야 할 기자가 운동장에서 직접 뛰는 걸 썩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무엇보다 수심위라는 기구 역할이 미덥지 않았다.
그래도 수락한 건, 실제 수심위원들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 직접 체감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였다. 사법 정의를 세우는 데 미약한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어쭙잖은 마음도 살짝 있었다. 어느 날 집으로 수심위 운영지침과 함께 위촉장이 날아왔다.
검찰이 마지못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 관련 수심위를 열겠다고 했을 때도, 또 명품백을 건넨 최재영 목사의 강력한 요청으로 수심위를 열겠다고 했을 때도 해당 현안위원 선정 연락이 오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했다. 250명가량의 수심위원은 직역별 4개 그룹으로 나뉜다. 변호사, 법학교수, 시민단체∙종교∙기타전문직, 그리고 언론인∙비법학교수∙퇴직공직자다. 수심위 소집이 결정되면 해당 검찰청 검찰시민위원 2명 입회하에 수심위원장이 그룹별로 마련된 4개 추첨기에서 공을 무작위로 뽑는 방식으로 현안위원 15명을 골라낸다고 한다. 로또 방식이다. 6% 확률이니 두 번 중 한 차례는 걸릴 확률이 12% 정도 되겠다. 높진 않지만 기대해볼 만했다.
선정 연락이 왔을 때 수락을 할지 말지 마음을 정한 건 아니었다. 수심위원 요청을 받았을 때처럼 역시 고민이 됐겠지만, 이 또한 수락했을 공산이 크다. 기왕 경험을 해볼 거라면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안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정말 로또처럼 뽑는 게 사실일까 하는, 전혀 근거 없는 의심도 살짝 한다. 어느 그룹에서 몇 명을 뽑는지부터 모든 과정이 다 ‘깜깜이’여서 그렇다.)
알다시피 두 차례 수심위 결론은 엇갈렸다. 김 여사 수심위는 위원 전원이 무혐의 불기소 의견을, 최 목사 수심위는 8대 7의 근소한 차이로 기소 의견을 냈다. 검찰은 김 여사 수심위 권고는 따랐고, 최 목사 수심위 의견은 내쳤다. 명품백을 준 사람만 기소하고 받은 사람은 불기소하는 형평성 논란을 자초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현안위원 중 한 명이었다면 어땠을까. 김 여사 수심위에 참여를 했다면 나는 그들과 다른 판단을 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검찰이 제공한 편협한 정보와의 싸움에서 두 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회의에서 추가 답변을 요구하고 반론을 냈어도 그냥 묻혀버렸을 것이다. 해당 수심위 참여 사실도, 누가 소수의견을 냈는지도, 회의록도 철저히 비공개니까. 그러니 그저 아무런 부연도 없이 불기소 의견을 낸 수심위의 일원으로만 남았을 테다.
최 목사 수심위 현안위원이었다면 자괴감은 더했을 것이다. 8시간 넘는 격론 끝에 기소 의견을 모아서 냈는데 결국 불기소라니. 이럴 거면 수심위는 왜 하느냐, 정말 들러리에 불과한 것이냐 비분강개했을 것이다. 지금 두 수심위에 참여했던 위원들 상당수가 누구에게도 말은 못 한 채 이런 심정으로 끙끙 속앓이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도 수심위 소집 요구가 많았다. 이번에도 참여 기대는 어그러졌다. 검찰은 수심위 대신 내부 ‘레드팀’에 그 역할을 맡겼다. 부담스러우면 소집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의견이 다르면 무시하면 그뿐인 게 수심위였다.
아직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음에도 수심위원이라는 그 자체가 부끄럽다. 이대로면 향후 다른 사건에서 추첨에 뽑히더라도 선뜻 수락할 마음이 생길 리 없다. 같은 생각을 하는 수심위원들이 많을 것이다. 수심위 폐지론이 들끓는다. 검찰이 수심위 제도를 유지해야겠다면 적어도 수심위원들에게 납득될 설명은 해주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