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불 기각률 84% 벽 뚫고 심리 계속하기로
'역대 최대 규모 재산 분할'에 쟁점도 여럿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세기의 이혼' 상고심을 살피고 있는 대법원이 사건을 단축 심리해 종결할 수 있는 시한을 넘겨, 심리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 가사소송의 경우 수개월 내 판결을 확정하는 대법원으로서는 드문 일이다. 상고심에서도 SK그룹 성장에 미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도움을 딸인 노 관장의 기여도로 볼 수 있을지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11월 8일 심리불속행 기각 시한 넘겨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소송의 심리불속행 가능 기간인 전날 밤 12시까지 상고심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원심 판단에 법 위반 등 6가지 사유가 존재하지 않으면 계속 심리하지 않고 판결을 확정하는 것이다. 사건 접수 후 4개월 내에만 가능해, 7월 8일 상고장이 제출된 이번 소송의 기한은 전날까지였다.
이는 대법원이 항소심 결론의 정당성을 면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통상 가사소송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비율이 84%에 달하는 점으로 미뤄보면 이례적이란 분석도 나온다. 법률심인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다투진 않지만 △법리 오해로 유∙무죄 판단을 잘못한 부분이 있는지 △증거조사에서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한 지점이 있는지 살핀 뒤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 사건을 원심 법원에 되돌려보낸다.
비자금, 재산분할 기산점, 판결문 경정 등 쟁점
상고심이 본격 심리에 돌입하면서, 핵심 쟁점은 최 회장 보유 주식의 특유재산 인정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결혼 전 일방이 취득한 고유재산인 특유재산은 이혼 시 분할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앞서 항소심은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 300억 원을 지원하는 등 SK그룹 성장의 '뒷배'가 돼줬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받아들여, 최 회장이 SK주식 절반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측은 총 470쪽 분량 상고이유서에서 항소심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노 관장이 SK주식 형성과 가치 상승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990년대 대대적인 검찰 수사에서도 입증되지 않은 비자금의 존재를, 가사소송에서 노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온 약속어음 등을 근거로 인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란 취지다.
항소심에서 혼인 파탄 시점과 재산분할 기산점을 달리 잡은 것도 주요 쟁점이다. 최 회장은 2018년 11월 당시 9,200억 원 상당 주식을 친족들에게 무상증여했는데, 2심은 이를 최 회장이 이혼조정신청 이후 노 관장의 동의나 양해 없이 유출한 재산으로 보고 분할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에 재산 규모가 비약적으로 증가, "사실상 0대 100 판결이 됐다"는 게 최 회장 측 주장이다.
대한텔레콤(SK C&C 전신) 주식가치 관련 수치를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 이후 바로잡은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당초 항소심은 판결문에서 1998년 5월 기준 대한텔레콤 주식당 가치를 '100원'으로 기입했다가 '1,000원'으로 수정했다. 재판부는 '단순 오기'에 불과했다고 설명하지만, 최 회장 측은 SK그룹 성장에 대한 기여도 계산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중대한 결함'으로 본다.
27년 만 파경... 이혼소송 새 역사 쓸까
최 회장은 지금의 SK그룹 뼈대를 세운 최종현 선대 회장의 맏아들로, 미국 유학 시절 만난 노 전 대통령의 맏딸 노소영 관장과 1988년 결혼했다. 정경유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세기의 결혼'으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러던 2015년 최 회장이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 사이에서 낳은 혼외 자녀의 존재를 언론을 통해 고백하며, 혼인 생활 27년 만에 이혼을 예고했다.
노 관장은 최 회장의 조정 신청까지 거부하며 4년여간 "가정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후 2019년 12월 맞소송을 내고 위자료 3억 원과 최 회장의 SK주식 절반을 요구했지만, 1심에선 최 회장이 보유한 일부 계열사 주식 및 현금 등에 대해서만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배우자로서 주식 형성과 가치 상승 등에 대한 노 관장의 기여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후 2심에서 노 관장은 재산분할 액수를 2조30억 원으로 상향하고 분할 형태도 주식에서 현금으로 변경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지금의 SK그룹이 있게 됐다"는 변론을 추가했고, 전략은 성공해 1조3,808억1,700만 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 재산 분할 판결을 받아냈다. 이 같은 판결에 최 회장은 불복, 재판부의 판결문 경정에 재항고하고 본안에 대해서도 상고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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