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반공법 위반' 징역 5년 확정 후
올해 재심 개시... "시대 상황 고려해야"
박정희 정권 말기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피해자가 44년 만에 재심을 거쳐 무죄를 선고받았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허경무)는 A씨의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혐의 재심에서 15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전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1939년 일본에서 태어난 A씨는 해방 후 한국에서 생활하다가 1979년 남민전 일원으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A씨가 1976년 3월부터 1979년 9월까지 수십 차례 남민전 활동에 가담했다며 기소했고 법원은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 1980년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이 확정됐다.
남민전은 반유신 민주화운동,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 등을 목표로 1976년 결성된 지하 조직이다. 공안당국은 1979년 10월부터 유인물 배포 등 이들의 활동에 국가보안법 혐의를 적용해 80여 명을 검거했다. 유신 말기 최대 공안사건으로 평가받는 이 사건으로 이재오 전 한나라당(옛 국민의힘) 의원과 김남주 시인 등이 투옥됐다.
사건은 2000년대 들어 새 국면을 맞았다. 2006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일부 범법행위는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며 29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판단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도 일부 위법수사 사실을 인정했다.
올해 5월 개시 결정이 내려진 재심 과정에서 A씨 측은 "과거 수사·재판 단계의 조서들은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수사기관에선 가혹행위 탓에 마음에 없는 말을 했고, 그 심리상태가 법정에서도 지속돼 진술에 임의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법원은 그러나 적어도 앞선 재판 과정에서 작성된 공판 조서나 증인신문 조서는 증거로서 자격이 있다고 인정했다. 당시 그가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혐의를 부인하며 "검찰 진술은 사실과 다르다"고 대답한 점 등을 감안하면, 임의성 없는 진술만 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A씨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유일한 증거인 법정 진술 내용 자체가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을 번복하는 것이어서, A씨가 남민전의 반국가단체적 성격을 알고 활동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 행위에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할 명백한 위험성이 있음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신헌법 철폐와 반독재 민주화의 열망이 강했던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A씨가 단체 강령만 보고 그 성격을 인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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