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유족이 위탁 운영 맡아
열 달간 직원 8명 퇴직, 사업 진행 0건
공식 홈페이지는 성인사이트로 연결
관장 “다양한 사업, 되레 정체성 결여”
“자격 미달, 전주문학관으로 전환”해야
지난 19일 오후 전북 전주시 풍남동 한옥마을 태조로. 해마다 1,000만여 명이 찾는 관광 명소답게 평일인데도 거리 곳곳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반면 태조 이성계 어진(초상화)이 모신 경기전 인근 최명희문학관은 오가는 사람 없이 썰렁했다. 이곳은 대하소설 ‘혼불’을 쓴 전주 출신 최명희(1947~1998) 작가의 삶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2006년 문을 연 전주시 최초 문학관이다. 하지만 최근 존폐 논란에 휩싸이면서 시끌시끌하다. 올해 초 위탁 운영자가 바뀐 후 인력 충원이 수개월째 되지 않는 데다 각종 사업이 단 한 건도 진행되지 않아서다.
20일 전주시 등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문학관 민간 위탁 운영자가 혼불기념사업회에서 최명희기념사업회로 바뀌었다. 위탁 운영자가 바뀐 건 개관 이후 18년 만이다. 최명희기념사업회는 최 작가의 친동생들로 구성돼 각각 관장, 임원 등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회가 위탁 운영을 맡은 뒤 열달 동안 직원 8명이 그만뒀다. 이들 근무 기간은 길어야 40일 안팎이었고 대부분은 2~9일 만에 떠났다. 퇴직 사유로는 열악한 근무 환경이나 개인적인 사유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관장과 이달 초에 뽑은 직원 1명 등 2명만 근무 중이다.
1년 가까이 정원 4명을 채우지 못하는 등 기본적인 인력 확보조차 못해 사업 진행도 지지부진하다. 사업회는 공모 당시 △세미나 토론 △저명 작가 문학 강연 △혼불을 주제로 한 음악·미술·무용·연극 공연 △홈페이지·SNS(사회 관계망 서비스)·유튜브·블로그 운영 △체험용 상품 개발 등이 담긴 사업 계획서를 제출했다. 월별 사업 일정과 예상 인원, 비용 등까지 명시했지만, 현재까지 단 한 건도 추진되지 않았다. 지난해 90건 넘게 행사가 진행된 것과 대조적이다.
최명희문학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볼 수 있는 공식 홈페이지는 성인사이트 등 엉뚱한 페이지로 연결돼 사실상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유튜브도 1년 전 올라온 게시물이 마지막이다. 반면 강원도 원주 박경리문학관이나 서울 윤동주문학관 등 타 지역 문학관은 방문객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공식 홈페이지나 SNS에 다양한 영상과 사진 등을 게시하며 활발히 운영 중이다.
이에 대해 최용범 최명희문학관 관장은 “기존에 근무하던 혼불기념사업회 직원들의 고용 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참고할 만한 자료 하나 없이 운영을 맡았다”며 “채용도 노력했지만 계속 직원이 빠져 나가면서 사업 추진이 다소 늦어지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손글씨 쓰기 등 각종 행사가 많았는데 이는 문학관의 정체성을 벗어나는 일”이라며 ”방문객들은 문학관에 작가 친동생(최 관장)이 있다는 걸 매우 좋아하고, 다양한 행사보다 문학관 자체의 스토리나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지역 내에선 해당 단체가 문학관을 운영하기에는 자격 미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성국 전주시의원은 “현재의 운영 방식으로는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다”며 “최명희문학관을 전주문학관으로 전환해 전주의 문학적 정체성을 담은 다양한 작품과 문인들의 유산을 폭넓게 조명하는 것이 오히려 지속가능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시는 문학관 성격 등 운영 방식을 바꾸기에는 아직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입장이다. 전지현 전주시 한옥마을사업소장은 “현 사업회와 계약 기간(3년)이 아직 남아 있고, 직원 채용이나 사업 추진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신경 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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