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이시바 논의 없이 주요 사안 결정
기시다에 외교 의존… 공무원은 '관망 모드'
"여당 내 '이시바 흔들기' 나설 힘도 약해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취임 두 달 만에 사실상 '식물 총리'로 전락했다. 주요 정치 사안과 관련, 집권 자민당 2인자가 '총리 패싱'을 하며 직접 결정하거나 전임 총리의 의중을 묻는 일이 빈번해지는 등 '총리관저'(한국 대통령실에 해당)의 힘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다만 이시바 정권이 위태로워진 것은 아니다. 10·27 총선에서 참패한 자민당 내에선 '이시바 흔들기' 움직임도 눈에 띄지 않는다. '기묘한 정권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총리관저 집중 권력, 당으로 이동"
1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관료 조직을 상징하는 용어인 '가스미가세키'(도쿄의 관청가)에서는 최근 권력 구도 변화에 따라 공무원들의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이시바 총리가 취임한 이후, 그동안 총리관저에 집중돼 있던 권력이 집권당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시바 총리는 가스미가세키의 정책 발굴·시행을 장려하기 위해 아베 신조 전 총리 때부터 이어져 온 '톱다운'(하향식) 의사 결정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하지만 힘이 약한 총리의 말발은 먹히지 않는 모습이다. 한 외무성 간부는 '이시바 정권이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다'는 게 현재 가스미가세키의 분위기라고 아사히에 말했다.
이는 이시바 총리가 주요 사안을 직접 이끌어가지 못해서다. 이미 지난 총선에서 드러났다. 자민당 총선 참패를 유발한 '공천 배제 의원 지역구 2,000만 엔(약 1억8,600만 원) 선거 활동비 지급'은 사실상 당 2인자인 모리야마 히로시 간사장의 결정이었다. 아사히는 복수의 당 소식통을 인용해 "2,000만 엔 지원은 모리야마 간사장이 당 사무총장과 논의해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중대 결정도 총리 패싱... 이시바 존재감 약화"
정권 운영의 중대한 결정도 이시바 총리를 건너뛴 채 이뤄지고 있다. '여당 참패·야당 승리'로 의회 지형이 바뀌면서 자민당은 30년 만에 중의원 예산위원장 자리를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에 내줬는데, 이시바 총리와의 사전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민의 소득 실수령액을 늘리기 위한 '103만 엔(약 961만 원)의 벽(소득세 부과 연소득 최저선) 해소' 정책도 이시바 총리보다는, 자민당과 야당 국민민주당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오히려 전임자인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기시다 전 총리 주도로 발족된 새 의원 모임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시바의 영향력 상실에 따른, (총리로서) 재등판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게다가 외교·안보 정책의 경우, 이시바 총리는 아예 기시다 전 총리 의견을 반영해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시바 정권은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비자금 스캔들로 자민당 내 계파가 사실상 해체된 데다, 총선 참패로 낙선한 의원도 많아지면서 초래된 역설적 상황이다. 아사히는 "총리관저와 여당 모두 힘이 없는 상태라 이시바 총리를 흔들 에너지가 없다"며 "이시바 정권이 기묘하게 안정된 모습"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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