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자체 직접 찍어야 처벌 가능"
대법 판단에 "기계적 해석" 비판도
영상통화 중 나체 상태의 피해자 모습을 녹화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처벌할 순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재차 나왔다. 영상물 저장과 직접 촬영 행위는 구분해야 한다는 이유인데, 갈수록 지능화하는 성범죄에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반포등,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최근 수원고법에 돌려보냈다. 일부 혐의를 무죄로 보고 전체 형량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키르기스스탄 국적 A씨는 지난해 5~7월 옛 연인 B씨를 무자비하게 협박하고 스토킹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별 직전인 지난해 5월 피해자와 영상통화를 하던 그는 B씨가 나체로 샤워하는 모습을 녹화하고, 이를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하다가 다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A씨는 피해자를 집 밖으로 불러내려다 실패하자 피해자 차량 바퀴를 가위로 찢어 촬영하기도 했다. A씨는 해당 영상을 "너를 죽여서 무덤에 넣고 나서야 기쁠 것"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피해자 지인에게 전송한 혐의 등으로 고소당한 뒤에도 계속해서 B씨 집을 찾아가 법원의 잠정조치 결정까지 어겼다.
1·2심은 A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몰래 나체 사진을 촬영했다가 유포할 듯이 협박하고 실제 온라인에 전시했다"며 "B씨 아들에게까지 사진을 전송해 피해자는 상당한 정신적 고통과 성적 수치심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하급심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문언 규정상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는 신체를 직접 촬영한 경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휴대폰에 수신된 피해자의 신체 이미지 영상을 녹화한 A씨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신체 그 자체를 찍은 게 아닌 이상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다.
법리적 이유로 '영상통화 중 저장 행위'에 무죄가 선고된 사례는 처음은 아니다. 대법원은 2013년 "수신된 신체 영상을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동영상 파일로 저장했다면 피고인이 촬영한 대상은 '신체 이미지가 담긴 영상'이어서 법 조항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결론에 대해 법조계에선 "입법 취지를 무시한 기계적 해석"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빠른 기술 발전으로 성범죄 수법이 점차 지능화해 개별 사안마다 법 개정으로 대응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적극적인 사법부의 법 해석과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인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영상물 재촬영 행위에 대해서도 같은 논란이 반복돼 법이 바뀐 적이 있다"면서 "죄형 법정주의에 따른 엄격한 판단도 존중하지만, 입법 미비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무책임한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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