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출신 서울보건환경연구원 검사요원
지난 9월부터 '수의법의검사' 담당
"죽음에 이른 흔적 찾기 위해 집중"
"감정이입은 부검에 방해가 됩니다. 안타까운 동물의 사연, 경찰의 조사 내용은 참고 사항일 뿐 죽음에 이르게 된 흔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이현호(48) 검사요원은 동물 부검과 병리 관련 업무를 10년 넘게 담당한 이 분야 베테랑이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수의사로 근무했을 때부터 아프거나 폐사한 야생동물 문제를 다뤘던 그는 5년 전 연구원으로 소속을 옮겨서도 가축과 동물의 질병 관련 업무를 이어왔다. 이런 경력에도 부검대 앞에 설 때는 늘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이 검사요원은 "개나 고양이의 죽음을 마주하는 게 힘들 수 있어도, 이런 감정이 부검에는 방해가 된다"며 "내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배제하고, 경찰 조사 내용을 보고도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올해 9월 실시된 '수의법의검사'를 맡게 된 이후에는 더욱더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의법의검사는 학대 피해 의심 동물 사체 부검, 중독물질·감염병 검사 등을 통해 죽음의 원인을 파악하는 절차다. 지난해 4월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동물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검사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전국 지자체 중 서울시가 처음 도입했다.
수의법의검사는 관할 경찰서에서 학대가 의심되는 동물 폐사 사건을 의뢰하면 시작된다. 사체 부검과 엑스레이 검사 등 영상진단, 조직검사, 전염병·기생충·약물 검사 등을 거친 뒤 검사요원의 소견이 포함된 '병성감정결과서'를 경찰에 제출한다.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과학수사대(CSI)처럼 동물의 억울한 죽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이른바 동물 CSI인 셈이다.
이 검사요원은 "동물 사체가 들어오면 먼저 육안으로 상처나 감염 여부를 살핀다"며 "연구원은 '학대로 죽었다'고 단정하지 않고 최대한 죽음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다양한 단서들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동물이 자연사했는지, 외력에 의한 '외인사'인지, 질병 등에 따른 '내인사'인지에 따라 학대 여부에 대한 판단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부검한 '흰 고양이'를 사례로 들었다. "털이 새하얀 길고양이 조사 요청을 받았다. 겉으로 볼 때는 상처도 없이 깨끗했는데, 검사를 해 보니 간과 폐에 출혈이 있었다. 외력에 의한 죽음으로 추정했고 결국 경찰 수사 결과 동물 학대로 결론이 났다."
대부분 원인 미상인 동물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수의법의검사가 필요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다. 전국에 수의법의검사를 정식 과목으로 채택한 수의대도 드물다. 정부는 수의사 면허증 소지자 중 관련 업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 농림축산검역본부의 한 달 교육 과정을 거치면 검사요원 자격을 부여한다.
이 검사요원은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 명에 달하는 만큼 수의법의검사도 동물 학대 방지와 복지 증진 요구에 맞춰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지속적인 인력 확충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반려동물의 신체적 문제뿐 아니라 방치 등 심리적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학대의 영역에 포함시키고 있다. 유튜브 영상 속 동물의 정서적 스트레스도 분석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동물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는 국내에서도 수의법의검사의 전문성이 확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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