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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용돈" "경로당 화투 자금"... 쌈짓돈 모아 기부한 무료급식소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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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용돈" "경로당 화투 자금"... 쌈짓돈 모아 기부한 무료급식소 어르신들

입력
2024.12.26 15:49
수정
2024.12.26 16:02
23면
0 0

무료급식소 '칠곡사랑의집' 이용 어르신들
110만 원 모아... 직원 성금 90만 원 더해 기부
"어려운 이웃 얼어붙은 마음 녹일 수 있길"

무료급식소인 경북 칠곡사랑의집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쌈짓돈. 칠곡군 제공

무료급식소인 경북 칠곡사랑의집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쌈짓돈. 칠곡군 제공

"따뜻한 국물 한술이 아쉬울 연말이잖아. 얼어붙은 마음이 사르르 녹았으면 좋겠어."

경북 칠곡군의 무료급식소 '칠곡사랑의집'을 수년째 이용하며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있는 이혁규(79) 할아버지는 얼마 전 급식소 한편에 마련된 작은 모금함에 몇만 원을 쾌척했다. 추운 날씨 속에도 종이 상자와 폐지를 팔아 생계를 잇는 그에게는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다. 따로 사는 손주에게 용돈이라도 주려 푼돈을 조금씩 모으던 터였다. 그는 "혹여라도 잃어버릴까 평소 돈을 베갯잇 속에 넣어 보관했었다"며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것만큼 기부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료급식소 '칠곡사랑의집'을 이용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쌈짓돈을 털어 기부한 사연이 알려졌다.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해결해 온 이들이 이번엔 자신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십시일반 발 벗고 나선 것이다.

30여 년 전 칠곡 왜관읍에 정착한 김말순(81) 할머니 역시 모금에 동참했다. 3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정부의 기초연금으로 생활할 정도로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김 할머니는 금쪽같은 만 원짜리 한 장을 모금함에 넣었다. 김 할머니는 "지금까지 도움만 받으며 살았는데 나도 누군가 도울 수 있다니 뿌듯하다"고 활짝 웃었다.

무료급식소를 이용하는 다른 어르신들 역시 만 원과 천 원 지폐는 물론 경로당에서 화투를 치기 위해 아껴 둔 10원, 100원짜리를 십시일반 모았다. 그렇게 온정으로 모인 쌈짓돈은 총 110만 원. 칠곡사랑의집은 지난 24일 어르신들의 성금과 센터 직원들이 내놓은 90만 원을 보태 이웃 돕기 성금 200만 원을 칠곡군에 전달했다. 어르신들의 성금을 전달받은 칠곡군청 사회복지과 공무원들이 동전 분류에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칠곡군 무료급식소 칠곡사랑의집을 이용하는 이이분(82·왼쪽) 할머니와 정창화(83·오른쪽) 할아버지가 24일 김재욱(가운데) 칠곡군수에게 이용객들과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칠곡군 무료급식소 칠곡사랑의집을 이용하는 이이분(82·왼쪽) 할머니와 정창화(83·오른쪽) 할아버지가 24일 김재욱(가운데) 칠곡군수에게 이용객들과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어르신들의 사랑나누기는 권차남 칠곡사랑의집 센터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지난해 8월에도 폭우 피해를 입은 이웃들을 위해 급식소 어르신들과 함께 성금 100만 원을 모아 전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3개월 전부터 급식소 한편 김치통에 구멍을 낸 작은 모금함을 마련해 놓고 어르신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다.

1997년 컨테이너 2동으로 시작해 2008년 칠곡군의 지원을 받아 왜관읍에 번듯한 건물을 마련한 칠곡사랑의집은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다. 평일(월~금) 점심시간에만 운영하는데, 일평균 이용객은 120여 명에 달한다. 권 센터장은 "날씨가 추워져 어르신들에게 '어려운 이웃을 도와보자'고 제안했는데 흔쾌히 동참해주셨다"며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모습에서 무료급식소 직원과 봉사자들도 깊은 울림을 받았다"고 말했다.

모금에 동참한 한 할머니는 "작은 정성이 어려운 이웃의 얼어붙은 마음마저 녹이는 따뜻한 한술로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작은 것 하나 나누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성금을 뜻깊게 사용하겠다"고 화답했다.

칠곡=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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