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무죄, 2심은 유죄 금고 4년씩
대법원, 파기환송... 무죄 취지로
"옥시와 공동정범 인정할 수 없어"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해 소비자들을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SK·애경·이마트 전직 임직원들이 다시 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대법원은 원료가 다른 살균제를 함께 사용한 피해자들에 대해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6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을, 나머지 회사 관계자들 11명에게 금고형이나 금고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주원료인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와 '이마트 가습기살균제' 등을 제조 또는 판매해 12명을 사망하게 하고 86명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가습기메이트는 SK케미칼이 제조해 애경산업이 판매했고, 이마트 가습기살균제는 이마트가 애경과 PB계약을 맺고 판매한 상품이다. 검찰은 이들이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이 주원료인 옥시싹싹을 제조·판매한 업체 관계자들과 함께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이 사건 피해자 98명 중 94명은 옥시싹싹을 함께 썼던 복합 사용 피해자다. 앞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대표는 징역 6년을 확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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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항소심을 전부 파기했다. 항소심은 CMIT·MIT와 피해자들의 상해 또는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1심을 뒤집고 임직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 중 성분이 다른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해 판매한 옥시와 피고인들 사이에 공동정범(2인 이상이 공동해 죄를 범한 경우)으로 인정한 부분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소비자들이 제품 간 성분 차이를 인지할 수 없고, 여러 종류를 사용해 피해가 발생하면 그 기여 정도를 가려낼 수 없단 점을 들어 옥시와 SK·애경·이마트가 공동정범 관계에 있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공동정범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판례상 과실범의 공동정범은 의사를 주고받거나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공동 인식이 있어야 성립한다. 이 사건에선 관련 피고인들과 SK·애경·이마트 전직 임직원들 사이에 소비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결과에 대한 공동의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각각의 가습기 살균제가 용도나 용법만 같고 주원료가 전혀 다르단 점이 근거가 됐다.
항소심이 근거로 든 제품 간 차이를 소비자들이 알아차릴 수 없었단 사정은 공동정범 성립과 무관하다고도 했다. 대법원은 "그러한 사정만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하면 국경을 초월한 구매·소비가 이뤄지는 현대사회에서 제조·판매자들에 대한 공동정범 성립 범위가 무한정 확장된다"고 지적했다.
사건은 다시 법원 심리를 받게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 가습기 살균제만으로 복합 사용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더 심리할 것"이라면서 "공동정범을 인정하지 않아 공소시효가 완성된 부분은 면소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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