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담배 제조사 상대 소송
1심선 패소 "교수, 의사들 놀라워해"
"이번에 지더라도 끝까지 소송할 것"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것은 교과서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진실입니다.”
15일 서울고등법원 583호 법정. 머리가 희끗한 수트 차림의 노신사가 담배의 해악에 대해 설명했다. “40년 경력의 호흡기내과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한 가지 직함을 덧붙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현직 수장. 정기석(67) 이사장이었다.
정 이사장이 이날 법정에 등장한 건 민사6-1부(부장 김제욱) 심리로 열린 '담배 소송'의 원고 측 대표로서 직접 변론하기 위해서다. 건보공단은 2014년부터 KT&G,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 등 담배 제조회사를 상대로 533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이사장이 직접 변론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 이사장은 지난 7월 건보공단 이사장직에 취임했다.
정 이사장은 우선 1심 판단에 대해 "호흡기 질환을 진료하고 연구하는 교수들은 물론 의사들이 1심 판결에 대해 모두 놀라워했다. (판결 당시만 해도) 뭔가 변론이 잘못됐고, 곧 바로잡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흡연자의 폐암 발생 위험은 비흡연자에 비해 7.4배 높다.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과서에 있는 진실이자, 전 세계적인 상식"이라면서 "(이 때문에) 의사가 작성하는 의무기록지에 흡연 여부를 문진하는 것은 진료의 객관적 지표가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담배회사들이 발암 물질을 제조·판매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담배 회사들은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이 만든 담배의 중독성을 은폐해 흡연자들을 담배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만약 오늘날 담배가 발견됐다면 마약처럼 취급돼 제조·유통이 국가에 의해 엄격하게 규제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를 향해선 "법원이 전과 같은 판결을 내린다면, 흡연은 그저 또 다른 위험요인일 뿐이니 적당히 관리하라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면서 "이는 담배로 1년에 6만 명이 사망하고, 건보 재정이 연간 3조5,000억 원이 투입되는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전할 메시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정 이사장은 재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직접 변론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호흡기내과 의사로서) 폐암 환자를 40년간 지켜봤다"며 "담배 회사의 논리는 지나치게 현실을 모르고, 법리에만 치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소심에서 패소하더라도 다시 상고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해외에선 1998년 미국 46개 주 정부가 대형 담배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등 승소한 사례가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 없다. 정 이사장은 "(담배 제조회사들은 과거) 힘없는 개인들이 소송을 해서 졌던 것을 판례라고 자꾸 이야기한다"면서 "판례는 바뀔 수 있는 것이다. 패소하더라도 끝까지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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