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탄핵 보도 평가

한국일보 뉴스이용자위원회가 7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회의를 열어 계엄과 탄핵에 대한 보도를 평가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지난 두 달여간 한국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는 언론 보도에서 혼란과 비판이 적지 않다. 계엄과 내란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쏟아졌고 서부지법 침탈 같은 극단적 사건이 현실화했다. 뉴스이용자위원회는 계엄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법치주의를 존중하는 한국일보의 관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취재와 보도의 깊이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7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회의에는 김경희 위원장을 비롯한 외부 위원 7명이 참석했고 권혜진 위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밝혔다. 한국일보에서는 사내 위원인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외에 김회경 논설위원과 송용창 뉴스룸국 국제정치부문장이 함께했다.
"불법에 선 그은 논조로 차별화"
뉴스이용자위 위원들은 사설과 칼럼, 기사가 기계적 중립보다 불법 계엄과 법치주의 훼손에 선을 긋는 쪽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일보는 사태 초기부터 계엄이 잘못됐다는 관점을 명확히 해 차별점이 있었다"며 "법적 쟁점을 빠르게 포착해 보도하면서 법치 훼손과 윤석열 대통령 측 대응 등을 의제화해 균형 있게 다뤘다"고 평가했다. 그는 '법치주의 작동 확인한 현직 대통령 체포'(1월 16일 자) '뜻밖의 윤 탄핵 반대 여론 상승…민주당 성찰해야'(1월 18일 자) '판사 테러 그냥 두면 나라 근간이 위태롭다'(1월 21일 자) 같은 사설을 거론하며 "여야를 모두 비판하면서도 양비론이 아닌 방향성을 제시했고, 제목이 명확해 논조가 잘 전달됐다"고 평했다. 권혜진 위원 또한 "일부 언론에 양비론적 기사가 많았지만 한국일보는 계엄의 위헌·불법성을 지적하는 기사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희원 칼럼 '내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2024년 12월 24일 자) '이 광기를 누가 만들었나'(1월 20일 자)에 대해 "주변에서 공유해준 분들이 많았다. 온라인판에 계엄 선포 직후 여야 대응을 일지로 정리해준 점도 좋았다"고 했다.
![윤 대통령 체포에 대한 사설(왼쪽)과 [김희원 칼럼] '내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에 삽입된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여야 대응을 정리한 일지.](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5/01/16/91a48437-1257-4fd9-86c6-c544403e80ad.jpg)
윤 대통령 체포에 대한 사설(왼쪽)과 [김희원 칼럼] '내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에 삽입된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여야 대응을 정리한 일지.
장민제 위원은 '사법시스템 부정하며 지지자 선동하는 尹'(1월 3일 자), '尹 지지자 법원 난입, 법치가 짓밟혔다'(1월 20일 자) '재판관 성향 따라 판결?… 사법 불신 조장하는 尹과 여당'(2월 3일 자)에 대해 "윤 대통령과 지지자 주장에 편승해 헌재 흔들기 보도를 하는 일부 언론과 달리, 과거 사례, 전문가 인터뷰 등을 활용해 사법시스템에 대한 공격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줘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정명화 위원은 서부지법 난입 유튜브 생중계 관련 기사인 ''서부지법 폭력' 삭제된 영상 봤더니... "문 부수고 있다" 실토'(1월 25일)가 "당시 상황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접속자 수, 조회 수, 후원금 액수 등을 분석해 이 사태를 부추긴 유튜브 생태계와 가담자의 법적 처벌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담았다"고 칭찬했다.
"진실 근접하려면 더 깊이 취재해야"
그러나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정확한 진실에 다가가려면 더 심층적인 취재와 보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사건 관련자의 발언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으론 부족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헌재 발언과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을 비교한 '尹 “실패 아닌 빨리 끝난 계엄… 野 경고용 아냐” 궤변만 쏟았다'(1월 24일 자)에 대해 유 위원은 "쟁점별 발언 내용을 그대로 정리했는데 주장의 모순을 지적할 필요가 있었다"고 짚었다. 강민구 위원은 "여론조사기관 병력 투입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내가 안 했다', 김 전 장관은 '내가 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게 탄핵심판에서 왜 중요한지 법적 근거나 배경이 궁금했다"며 "주장의 의도와 근거에 대한 해설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하상응 위원은 "탄핵 반대 세력의 '내분'에 대한 기사가 흥미로웠는데 '광화문 파' 전광훈 목사와 대척점에 서 있는 '여의도 파' 손현보 목사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는 궁금증이 남았다. 더 자세한 정보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집회에 사람들을 동원하는 실태에 대해서도 심층 취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부정선거론이 제기하는 쟁점과 반박 증거를 다룬 팩트체크 기사.
음모론, 잘못된 주장을 바로잡는 팩트체크 기사에 대한 요구도 많았다. 유 위원은 '전자개표기 조작? “수개표 병행”… 사전투표 조작? “구조적 불가능”'(1월 25일 자) 기사에 대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의혹과 반박 증거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고 호평하면서도 "그런데 계엄 이후 팩트체크 카테고리에 올라온 기사는 이 한 건뿐"이라고 팩트체크 기사 빈도와 노출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김 위원장은 내란죄 철회 관련 논란을 다룬 '내란죄 빼면 ‘국회 의결’ 다시?… 위헌 여부만으로 탄핵 판단 가능'(1월 6일 자), 서부지법 폭동이 국민저항권이라는 주장을 점검한 '헌법학자들 “법원 점거가 국민 저항권? 요건 안 돼”'(1월 21일 자) 같은 팩트체크가 더 많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팩트체크를 하면서 '법조계에 따르면'이라고 익명 취재원을 활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부문장은 "팩트체크 기사를 더 많이 생산하고,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내란죄를 심판 대상에서 뺐다는 논란에 대한 팩트체크 기사.
계엄 선포 전모를 인물 중심으로 아카이브한 인터랙티브 '12·3 불법 계엄의 시작과 끝'(1월 23일)은 좋은 시도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지적됐다. 유 위원은 "방대한 자료가 개별 인물 설명에 집중돼 있어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나열됐다"며 인물과 타임라인을 연동하거나 한눈에 들어오는 인물관계도를 그리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장 위원도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건지 직관적으로 알기 어렵다. 한 장면에 인물이 너무 많이 나와 오히려 산만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시간대별로 정리한 타임라인, 또 앞으로 탄핵심판이나 형사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주는 캘린더가 있다면 좋겠다고 권했다.

비상계엄의 전모를 인물 중심으로 정리한 인터렉티브 '12·3 불법계엄의 시작과 끝'
"여론조사 보도 투명하게, 신뢰성 검증도"
여론조사 보도와 관련해선 필수 기재사항이 누락되거나 조사 결과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 위원은 1월 18일 자 1면 '‘尹 방탄 반대, 이재명에도 반감’ 갈 곳 없는 중도'에서 "여론조사 표본 크기, 조사 대상, 조사 기간, 응답률 등 중요 정보가 빠져 있다"고 짚었다. 이는 선거여론조사 보도지침에도 어긋난 것이다. 집회 참가자 분석 기사의 출처인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된 데이터인지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여러 위원들로부터 나왔다.
하 위원은 '尹 탄핵 '인용' 55% '기각' 40%... 탄핵 찬반 격차 줄어[NBS]'(2월 7일)에 대해 '차기 대통령감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은 응답률 합이 100%이고 '대선 후보 호감도'는 합이 100%를 훨씬 넘는, 다른 방식의 조사인데 이에 대한 설명 없이 기술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강 위원은 '“尹 탄핵 찬성” 48%→75%… 탄핵 민심에 불을 지른 뜬금없는 비상계엄'(2024년 12월 19일 자)에 대해 "계엄에 의해 탄핵 찬성 여론이 크게 증가했다는 기사인데 2024년 8월 조사와 12월 조사를 비교하는 게 합당한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계엄이 탄핵찬성 여론 급증에 영향을 줬다는 기사의 그래픽.
최근 여론조사의 편향성 논란과 관련해 하 위원은 "양질의 여론조사와 질 나쁜 여론조사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尹 지지율 40%? '편향 조사' 논란…민주당 "여론 호도 고발"'(1월 7일)에서 보도된 여론조사가 유도 질문으로 문제가 된 경우였다. 그는 "기사에 문제 있는 질문지를 그대로 보여준 점이 좋았다"며 "응답자 이념성향 비율이 진보 14.5%, 보수 40.6%인 황당한 여론조사도 있었는데 선거관리위원회가 '성, 연령, 지역' 세 가지 할당만 요구하기 때문에 합법이기는 하지만 믿기 어려운 조사다. 이런 것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달라진 시위문화와 청년층의 참여 등 시민들 취재보도는 크게 부족했다는 의견도 빠지지 않았다. 정지훈 위원은 "한국일보에서 시위문화를 다룬 기사는 3개뿐이었다"고 지적한 뒤 청년들의 집회 참여의 의미와 정치 참여를 심층적으로 다뤄줄 것을 당부했다.
"궤변 받아쓰거나 편견 조장 제목 문제"
이밖에 보도 전반에서 문제로 여겨지는 제목이 여러 건 지적됐다. 계엄과 관련해 사실이 아닌 궤변을 직접 인용해 비판 없이 전달한 '윤 대통령 "계엄 당시 군 열 몇 명 정도가 국회에 겨우 진입"'(2월 4일), 엇갈리는 주장을 동등하게 나열한 '홍장원 '싹 잡아들여' 확인에... 尹 "계엄 무관, 간첩 수사 얘기"'(2월 5일 자) 등이다. 유 위원은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을 제목에 큰따옴표로 인용해 보도하면, 독자에게 사실처럼 여기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지양할 것을 주문했다.
권 위원은 '"보상금 횡재" "정치 공작" 악플에 두 번 우는 유족… 검경, 모욕글 엄정 대응'(1월 2일)을 두고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제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사에 '무안공항 유족들만 횡재했다' '보상금 받을 생각에 속으로는 싱글벙글일 듯' '놀러 가서 죽었는데 왜 추모하냐' 등 악플을 그대로 전했고 제목에까지 직접 인용한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정지훈 위원은 '"비행기 터진 거 봤제?" 공차 가맹점 직원 망언에 본사 사과'(2024년 12월 30일)는 사고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제목"이라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견을 여과없이 드러내거나 강화하는 제목도 도마에 올랐다. 유 의원은 '임대주택 산다는 게 자랑이 될 수 있을까… LH의 리모델링 도전'(2월 5일)은 "임대주택에 부정적 시각을 전제한 제목이어서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지면에 실린 기사 제목은 '빛이 들어왔다, 삶이 달라졌다… 임대주택의 마법'으로 문제가 없었는데, 온라인 기사의 제목은 자주 문제가 보인다는 평이었다. '제주항공 품은 애경그룹 어머니도 큰아들도 사죄했다'(2024년 12월 29일) 역시 "기업 구조를 가족 관계로 축소하는 인상을 주는데 사고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살인 전과자도 있는데… 외국인보호소 ‘빗장’ 그냥 풀릴 판'(2월 4일 자) 기사의 내용도 비판을 받았다. 정명화 위원은 "기사에 장기 보호 외국인 중 32%가 형사범이라는 등 흉악범죄 사례를 자세히 보도해 한국사회가 위험해질 것이라는 논조를 담아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외국인에 대한 무기한 보호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것인데 일부인 형사범의 존재가 외국인보호소 필요성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점, 기사에 쓰인 '불법체류자' 용어가 유엔 권고 위반이라는 점, '이주노동자 등을 잠재적 범죄자 또는 전염병 원인 제공자 등으로 몰아갈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반인 조명한 부고와 기후플레이션 다룬 기획 인상적"

평범하지만 가치 있는 삶을 살았던 일반인의 죽음을 조명한 '비로소, 부고 ' 기획 첫 회.

기후변화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서민의 고충을 조명한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기획.
평범한 이들의 부고 기획 '비로소, 부고'(2월 3~7일 자)는 지난 8기 뉴스이용자위원회의 제안을 반영한 기획으로, 많은 위원들이 좋은 기사로 꼽았다. 사고 피해자를 돕다 사망한 의인을 다룬 첫회 '생면부지 남을 구하려 목숨을 던졌다... "다시 돌아와도 또 도울 사람"'에 대해 정지훈 위원은 "그가 남긴 의로운 행적과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한 훌륭한 기획 기사"라고 칭찬했다. 유 위원은 "죽음의 불공평성을 제기하고 평범한 고인의 죽음을 조명한 점이 인상적"이라며 "다만 이러한 비극적 죽음을 초래한 시스템의 문제을 짧게라도 다룬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로 인한 밥상의 위기를 다룬 ‘기후변화, 밥상의 위기’ 기획(1월 13~16일 자)도 호평을 받았다. 김 위원장은 첫 회 ‘무·쌈 채소값도 버거워…콩나물만 겨우 집었다’에 대해 "주요 작물의 연도별 가격 추이와 소득 하위 20%의 식비 비중 급증을 데이터로 보여주면서 기후변화가 가져온 사회적 약자들의 위기를 잘 보여줬다"고 했다. 권 위원은 기고 '과거사위 홈페이지, 영구 보존해야'(2024년 12월 12일 자)에 대해 "희생자의 알 권리와 명예회복, 비극을 널리 오래 알리려면 과거사위 홈페이지를 영구보존해야 한다는 필자 주장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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