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김천 귀농 은퇴자 인터뷰
편집자주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액티브 시니어(액시세대)가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지역이 어떤 곳인지, 액시세대를 불러들이기 위해 각 시·군은 어떤 노력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지역을 찾아가 그곳에서 생활하는 은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또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해당 지역의 장점과 약점을 분석해, 10회에 걸쳐 매달 네 번째 목요일에 게재한다.

허진영(왼쪽부터) 산중햇살농장 대표, 정현선 배금도가 대표, 신윤용 포도 농부가 지난달 19일 김천시 구성면 배금도가 사무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_자기소개 부탁드린다.
허진영(산중햇살농장 대표) : 서울 대기업에서 33년 근무했고, 은퇴 후 고향으로 귀농해 10년째 농장을 운영한다. 또 대구한의대학교 한방 경영코스에 다니며 약초 연구를 하고 있다.
정현선(배금도가 대표) : 서울 금융회사에서 일하다 퇴직한 후, 우리나라 전통 발효 기법에 대해 11년째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다. 신라호텔 한식당에 전통주를 공급하는 등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전통주 장인이셨는데, 그 핏줄이 이어진 모양이다.
신윤용(포도 농부) : 서울에서 전산 분야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13년 국립종자원이 김천 혁신도시로 이전할 때 함께 이주했다. 6년 전 은퇴 후 김천에 정착해 포도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정현선 배금도가 대표
_김천에 정착한 이유와 살다 보니 느끼는 점은.
정 : 은퇴 후 발효 작업장이 적합한 지역을 찾아다녔다. 누룩 같은 발효 세균이 자라기 좋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김천을 선택했다. 김천 주민과 융화하는 데 오래 걸렸다. 10년이 됐는데 여전히 힘든 부분이다. 어려움을 이겨내며 자리 잡고 나니, 젊은이들이 유입되지 않고, 노인만 모여 사는 김천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든다. 어렵게 젊은 직원들을 뽑아도 금방 떠난다. 가장 오래 버틴 직원이 27일이다.
신 : 직장이 김천으로 이전할 때 혼자만 내려올 생각이었다. 아내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져, 마당 있는 집을 구해 김천에 정착했다. 한 2,000평 정도 포도 농사를 짓는다. 서울 소유한 집 임대 수입과 농사 수입으로 생활하는 데 크게 부족한 것은 없다. 그런데 몇 년 전 정부가 태양광 사업을 확대하던 시절 업자의 권유에 솔깃해 태양광 시설을 설치했는데 요즘은 손해가 크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왔다 갔다 하면 국민들만 힘들어진다. 농협 등의 작물 추천도 그렇다. 전체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샤인머스캣같이 한때 유망한 작물을 획일적으로 심도록 유도해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반복된다.

허진영 산중햇살농장 대표
허 : 노모를 모시기 위해서다. 나이가 드시면서 병원 갈 일이 늘어나는 데, 그때마다 친척들 신세를 질 수도 없어서 귀향을 결정했다. 친척과 학창 시절 친구들이 많아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더 힘든 부분도 있다. 고향 친구들에게서 서울 대기업에 다니다 귀향했다는 것에 대한 거리감 같은 걸 느낄 때가 있다. 빨리 농사에 적응하려 열심히 일하다 보면, 너무 일만 한다는 뒷말이 돌아다닌다.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에 대기업 퇴직 이전만큼 소득을 올린다.
_김천 혁신도시 ‘경북드림밸리’에 2013년부터 여러 공공기관이 입주하면서 김천이 달라진 점이 있나.
허 : 김천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그런데 혁신도시가 들어서며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도농 지역이 됐다. 혁신도시 입주 공기업들로 인해 새로운 상권도 형성됐다. 도로공사를 비롯한 대형 공기업을 필두로 지역 농산물 소비 등이 활발히 이뤄져 농민 입장에서 좋은 점도 많다. 하지만 김천구미역에서 KTX로 서울까지 1시간 반쯤 걸리기 때문에 공공기관 직원 중에는 출퇴근하거나 혼자 내려와 근무하다 주말에 서울로 가는 경우가 많다.

신윤용 포도 농부
신 : 내가 2014년 김천에 올 때만 해도 공기업들이 속속 들어서며, 상가가 꽉 차고 활발한 모습이었는데, 점점 활기를 잃어가면서 빈 상가도 늘어나고 있다. 같이 이곳으로 이주한 동료들 중에 정년 퇴임 후에도 계속 남은 경우는 드문 편이다.
정 : 김천 농촌지역 활성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외지인 농지 구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 규제다. 농업경영계획서나 농지취득자격증명서 등은 투기적 토지 거래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농지위원회 심사 등 겹겹이 놓여 있는 규제들 때문에 경북 인근 지역 밖 외지인의 토지 구매는 사실상 막혀 있다. 내가 땅을 구입한 직후에 규제가 강화됐다. 가뜩이나 젊은 세대가 떠나가는 상황에서 외지인의 유입까지 이렇게 봉쇄해 놓으니, 김천의 농촌지역은 소멸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10년 전 일본에 가보니 일본 농촌 노인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였는데, 그런 비극이 우리 농촌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장담하기 힘들다.
_귀농 귀촌을 꿈꾸는 사람에게 들려줄 조언은?
정 : 귀농 귀촌을 계획하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장기간 수입이 없더라도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저축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이들보다 은퇴 후 안정적으로 연금을 받는 사람들이 더 적합한 후보다. 정부도 농어촌 소멸을 막기 위해 각종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그 지원 대부분이 신규 귀농 귀촌 대상자에게 집중돼 있는 것도 문제다. 농촌에서 지속적으로 수입을 올릴 기반을 잡으려면 2, 3년 정도는 너무 짧다. 귀농 귀촌을 계획하는 사람은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하고, 정부의 지원 정책도 초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중장기적 지원 정책을 늘려야 한다.
정리 민채윤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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