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개표기 조작?... 수개표도 병행하고 있어
사전투표 조작?...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주장
사전투표율이 월등히 높다?... 통계 오독일 뿐
배여일화, 중국 해커 등... 모두 신빙성 떨어져
대법원, 이미 '부정선거' 주장 기각하며 일축
일부 '부실' 사례가 부정선거 증거로 오용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부정선거'를 언급하면서, 강성 보수층 내 부정선거 음모론이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검색량 수치인 '네이버트렌드'에 따르면, '부정선거'는 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달 6일 100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이전까지 줄곧 0이던 부정선거 검색량은, 이후 일평균 10을 상회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과 주요 공직자들이 부정선거 주장에 편승하고 조장하면서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크게 △전자개표기를 통한 조작 △사전투표 조작으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전자개표기를 전산으로 해킹해 투표 결과를 직접적으로 조작한다는 내용이다. 과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유튜버 김어준씨 등이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 시점에 폈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개표는 △전자개표기가 아닌 투표지 분류기를 통해 후보자별 투표지를 분류한 뒤 △심사계수기를 통해 숫자를 세는, '수개표'로 이뤄진다. 부정선거 논란 탓에 지난해 총선에선 사람이 직접 손으로 세는 절차까지 추가됐다. 특히 수많은 참관인들이 개표 과정을 지켜보고 있단 점에서 근거 없는 의혹일 뿐이다.
사전투표 조작론… 구조적으로 불가능
사전투표 조작론은 분화됐다. ①중국, 북한 등 불상의 국가에서 선관위를 해킹해 통합선거인 명부 등을 조작, 사전투표자를 부풀린 뒤 ②위·변조된 불법 사전투표지를 다량으로 사전투표함에 투입했다는 주장이다. ③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 ④이른바 배여일화(배춧잎·여백이상·일장기·화살표) 투표지 등은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오용된다. ⑤일부 개표소에서 교부된 투표용지와 실제 투표지의 숫자가 다른 건 대단위 선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인데도 부정선거의 증거로 확산됐다. ⑥심지어 미군이 중국 해커를 체포해 압송했다는 '가짜뉴스'까지 퍼지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에서 이 같은 주장에 기대고 있다. 팩트체크로 조목조목 따져봤다.
대법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결론적으로 이 같은 주장들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①먼저 선거인 명부가 조작이 가능하단 주장이다. 통합선거인 명부란 사전투표자가 이중으로 투표를 하는 걸 막기 위해 시·군·구별로 하나의 선거인 명부로 작성한 것을 의미한다. 불법 사전투표용지를 다량 투입하고도 부정선거가 발각되지 않으려면, 선관위의 서버를 해킹해 사전투표자를 부풀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선관위 서버는 외부와의 접속이 차단된 폐쇄망에서 운영된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발표되는 사전투표자의 수를 부풀리기 위해선, 해당 시간에 선관위 서버 보안을 뚫고 침투하는 전산 조작이 필요하다.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윤 대통령 측은 국가정보원의 선관위 보안점검 결과, 통합선거인 명부의 내용을 변경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모의해킹'을 전제로 한 것이다. 당시 효율적인 점검을 위해 △침입 탐지 △차단시스템 등을 일부 미적용했고, 선관위가 사전에 국정원이 요청한 △시스템 구성도 △정보자산 현황 △시스템 접속계정 등의 자료를 제공했다. 선관위는 24일 "현실에서 시스템에 접근해 선거인 명부 등을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②설령 선거인 명부를 조작한다고 해도, 위·변조한 사전투표지를 개표 전 사전투표함에 실제로 투입해야 한다. 사전투표는 관내·관외 사전투표가 있는데 관내 사전투표함은 관할 선관위에 보관하다가 개표소로 이동하고, 관외 사전투표함의 경우 투표 종료 후 열어 회송용 봉투를 정리해 우체국을 통해 해당 지역 선관위로 옮긴다. 이동할 때는 경찰 2명과 각 후보자별 참관인 1명이 동행한다. 전국 3,500여 사전투표소에서 매일 7,000여 명의 경찰과 후보자 측 참관인이 함께 움직이는데 사전투표함을 바꿔치기하거나 불법 사전투표지를 넣는 건 어림없다. 아울러 보관 중인 사전 투표함을 비추는 CCTV가 각 시도 선관위 청사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24시간 공개된다. 이 모든 걸 뚫고 부정선거를 실행하기 위해선 고도의 전산 기술과 해킹 능력, 대규모의 인력과 조직, 이를 뒷받침해줄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셈인데 대법원은 '부정선거 실행 주체 및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주장을 기각했다.
일부 투표 관리 부실… 부정선거 증거로 '둔갑'
그럼에도 부정선거론자들은 과학적 법칙을 오독하거나, 특수하고 극히 일부인 사례를 마치 진실로 호도하고 있다. ③대수의 법칙이 대표적이다. 모집단에서 무작위로 뽑은 표본의 평균이 전체 모집단의 평균과 가까울 가능성이 크단 개념이다. 한마디로 본투표와 사전투표 모두 같은 모집단에서 투표를 했는데, 어떻게 투표율 격차가 이렇게 크게 나타나느냐는 지적이다. 서울과 인천, 경기 등에서 과거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사전선거 득표율이 63%대 36%로 수렴하는 현상이 부정선거의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대표적인 오독이라고 지적한다. 애초 같은 모집단이란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박근혜 정부 통계청장 출신인 유경준 전 국민의힘 의원은 본보 질의에 "사전투표자와 본투표자는 전체 투표자에서 무작위나 임의로 분리된 게 아니다"라며 "민주당은 사전투표를 장려했고, 통합당은 부정투표를 우려해 적게 나간 결과"라고 지적했다. 외려 "사전투표 득표율이 63%대 36%로 나타나는 것은 253개 선거구 중 17개 정도에 그친다"면서 "서울, 인천, 경기 등 크게 묶어서 득표율을 봤을 때 63%대 36%로 수렴하는 건 오히려 대수의 법칙에 부합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④이른바 '배여일화' 투표지도 이들의 편견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지역구 투표지에서 푸른색의 비례대표투표지가 중복 인쇄(배춧잎 투표지), 여백이 중앙이 아닌 한쪽에 기울어져 나타난 투표지(여백이상 투표지), 투표관리관인이 뭉개진 투표지(일장기 투표지), 화살표가 박힌 투표지(화살표 투표지) 등이 나왔다는 것이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측은, 중국에서 저가로 사전투표를 위·변조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선관위는 현장에서 뽑아주는 사전투표지 성격상 이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시연을 통해서 입증했다. 대법원 역시 사소한 실수, 단순한 기계적 오류라고 판단했다. 이런 투표지가 나왔다는 게 투표 관리의 부실을 넘어 당락을 바꾸는 부정선거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접힌 흔적이 없는 빳빳한 '신권' 투표지가 나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는데, 사진상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대법원이 현미경으로 감정한 결과 접힌 흔적이 상당수 나타났다. 아울러 투표소에 있던 프린터로 출력됐단 사실도 증명이 됐다.
⑤투표용지 교부 수보다 투표수가 많은 경우도 부정선거 증거로 오용되고 있다. 21대 총선 때 전북 전주완산 삼천3동 투표구의 관내사전 투표용지 교부수는 4,674표인데 투표수는 4,684표로 나타난 바 있다. 약 10표 늘어난 셈인데, 부정선거론자들은 조작된 사전투표지가 유입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투표함을 개함해서 개표하는 과정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실수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동의 투표함을 개표하고 다시 담는 과정에서, 다른 동의 투표지가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같은 선거구의 노송동의 경우 교부 수는 2,553표인데, 투표수는 2,551표로 2표 적다. 평화1동, 삼천2동도 각각 1표씩 적은데, 이런 경우를 모두 정리하면 교부 수와 투표수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투표 관리에 아쉬운 대목이지만, 부정선거의 증거로 보기엔 여전히 무리가 있다.
⑥부정선거론은 단순히 투표 조작 주장을 넘어 미국과 중국이 포함된 가짜뉴스로 번졌다. 계엄 당일 계엄군이 미군과 공동 작전을 펼쳐 선거연수원에 있던 중국인 해커를 대거 체포해 일본 오키나와 미군 기지로 이송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인 해커가 선거개입 혐의를 일체 자백했단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한국 언론 기사에 언급된 미군에 대한 묘사와 주장은 전적으로 거짓(entirely false)"이라며 "대중의 신뢰를 해칠 수 있는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책임 있는 보도와 사실 확인을 촉구한다"고 반박했다. 선관위 또한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계엄 당일 선거연수원엔 5급 승진자 50명 및 6급 보직자 69명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공무원 88명, 외부 감사 8명 등 총 96명이 숙박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외에 황당한 주장이 난무하지만, 대법원 판단과 선관위의 해명을 넘어서는 내용은 없다. 최근 공개된 방첩사령부의 문건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방첩사 역시 부정선거론에 선을 그었다. △부정선거 주체 및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고 △관련된 양심선언이 전무하며 △부정선거 소송 126건이 모두 불인정됐음 등을 이유로, "자유민주주의 및 선거 시스템이 고도화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주장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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