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직 공무원, 정원의 50~60% 수준
해마다 채용 공고 내도 지원자 소수
업무 강도 대비 낮은 처우 주된 원인
"별정직으로 임용… 방역 업무는 민간에"

경기 용인시의 한 축산농가에서 수의사가 소에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처럼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시기에 수의직 공무원들은 평일, 주말 상관없이 근무해야 합니다. 살처분 등 위험한 업무를 하는데도 처우는 낮고 진급은 쉽지 않습니다."
전북 지역 수의직 공무원이었던 30대 이모씨는 10개월 만에 퇴직한 뒤 동물병원에 취직했다. 나름 사명감을 갖고 공직 생활에 임했지만 동물병원 수의사들의 업무 여건과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연차가 쌓여도 공무원과 민간 수의사 급여 차이는 2배 이상"이라며 "업무 강도에 비해 보수가 적으니 긴 고민 끝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씁쓸해했다.
겨울철 구제역,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 전염병이 확산하는 가운데 방역을 책임질 수의직 공무원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직급을 올려 채용하거나 민간 수의사에게 업무를 위탁하는 방식으로 대안을 찾고 있지만 방역 인력을 충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시도별 수의직 공무원 정원 대비 현원 비율은 높아야 60%대였다. 경남도 94명 중 60명(64%), 전남도 116명 중 76명(66%), 전북도 96명 중 66명(69%) 등이었고 강원도는 135명 중 71명(53%)으로 겨우 정원의 과반이었다.
수의직 공무원 부족은 가축 질병 발생 시 초동 방역에 긴급 투입되는 가축방역관 결원으로 이어진다.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령에 따라 각 지역에는 사육 두수와 농가 수 등을 고려해 가축방역관 적정 인원이 정해져 있다. 지자체들은 임기제 공무원인 공중방역수의사(대체복무자)나 위촉직인 공수의(민간 수의사)로 가축방역관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채용 인원 두 자릿수인데 지원자는 극소수

충북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2023년 5월 청주시 청원구의 한 한우농장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청주=뉴시스
각 지자체가 해마다 수의직 공무원 채용에 나서지만 지원자 자체가 극소수인 게 문제의 시작이다. 전북도는 지난해 상하반기 총 47명 채용 공고를 냈는데 지원자는 3명에 그쳤다. 전남도는 68명을 뽑을 계획이었지만 지원자 부족으로 최종 합격자는 6명에 불과했다. 광역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대전시는 지난해 4명을 채용하려 했으나 지원자가 2명뿐이었다.
시군 등 기초자치단체로 갈수록 인력난은 더욱 극심하다. 경남 사천시와 의령·하동·거창군 등 4개 시군에는 가축방역관이 한 명도 없다. 경남도 관계자는 "채용 공고를 내더라도 지원자 찾기가 힘들어 축산직이나 농업직 등 유사 직렬 공무원들이 업무를 대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규 채용 인원이 극소수인데 중도 퇴사는 줄을 잇는다. 전북도의 경우 최근 3년간 중도 퇴사한 수의직 공무원이 20명에 달한다. 이들의 근무기간은 4, 5년에 불과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중간에 결원이 생기다 보니 매년 채용 인원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처우 개선 한계… '농장주치의' 제도 도입해야

경북도 동물위생시험소 가축방역관이 지난해 2월 한 축산농가에서 전염병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소의 피를 뽑고 있다. 경북도 제공
수의사들이 공직을 기피하는 이유는 동물병원 수의사들과 비교할 때 업무 강도는 높고 처우는 낮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와 각 지자체는 직급 상향, 수당 인상 등 처우 개선과 함께 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남도와 전남도는 필기시험을 폐지했고, 순천시 등 일부 시군은 수의직 공무원을 7급에서 6급으로 올려 선발한다. 대전시는 특별승진도 검토 중이다.
수의직 공무원 채용이 어렵자 공수의로 그 자리를 채우는 지자체들도 있다. 전북도는 도비 3억3,000만 원을 투입해 공수의 6명을 위촉했다. 이들의 연간 급여는 1인당 5,500만 원으로 7급 수의직 공무원보다 많다.
그래도 정원 미달 사태는 지속되고, 공수의 등은 은퇴한 수의직 공무원들의 일자리로 활용돼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허주영 대한수의사회 회장은 "수의직 공무원 직급 체계는 50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며 "질병관리청처럼 별도 조직을 만들어 별정직으로 채용하고, 일선 방역 업무는 유럽 등이 도입한 '농장주치의' 제도처럼 민간 동물병원에 위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의사들의 업무 부담을 해소해 주기 위해 비전문가도 할 수 있는 소독제 구매·배부 등과 같은 업무들을 발굴하고 있다"며 "행안부 등 관계 부처와 처우 개선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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