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자은 시리즈' 2권 출간한 소설가 정세랑
통일신라 배경 역사 추리물…"유물·기록서 착안"
"신문왕부터 성덕왕까지 10권 쓰는 것이 목표"

정세랑 소설가가 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자신의 장편소설 '설자은, 불꽃을 쫓다'를 들어 보이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시리즈물은 캐릭터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나이 들고 변화하고 대화하며 동네 사람처럼 알아가죠. 작가로서 긴 시리즈를 쓴다면 '지금이다' 싶었어요."
지난 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소설가 정세랑(41)은 '설자은 시리즈' 2권 '설자은, 불꽃을 쫓다'를 낸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7세기 통일신라의 남장 여자 탐정 이야기인 '설자은 시리즈'는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을 자유롭게 오가는 정 작가의 첫 역사 추리물. 앞서 1권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2023년 출간됐다. 어려서부터 놀이터보다 박물관을 좋아했고 대학에서도 역사교육을 전공한 정 작가는 소설가가 되어서도 줄곧 품었던 "역사 시리즈물을 쓰겠다"는 숙원을 마침내 이뤘다. 문학 시리즈물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성과다.
남장하고 사건 해결하는 탐정 설자은

설자은, 불꽃을 쫓다·정세랑 지음·문학동네 발행·336쪽·1만6,000원
셜록 홈스 시리즈에는 탐정 셜록 홈스가, 미스 마플 시리즈에는 탐정 미스 마플이 있듯 설자은 시리즈에는 탐정 '설자은'이 있다. 주인공인 설씨 가문의 여섯째 딸 '미은'은 당나라 유학을 앞두고 죽은 오빠 '자은'의 삶을 대신 살게 된 인물이다. 1권에서 자은이 되어 신라의 수도 금성(오늘날 경북 경주시)으로 돌아온 그는 살인 등 온갖 사건에 휘말린 끝에 신문왕으로부터 집사부 대사로 임명받는다.
2권에서는 왕을 보좌하며 기밀 업무를 하는 집사부 대사로서의 본격적인 활약이 펼쳐진다. 정 작가는 자은을 "주목받지 않는 조용한 삶을 원했으나 큰 역할을 맡아 여러 고민을 하는 인물"이라며 "자신의 성품에 맞는 일만 할 수는 없다는 고민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과학수사나 폐쇄회로(CC)TV가 없는 시대를 그린 추리물에서 탐정은 어떻게 추리해 나갈까. 정 작가는 역사에서 답을 찾았다. 소설 속에서 자은이 불귀신 '지귀'의 소행으로 보이는 방화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바로 '고래기름'이었다. 정 작가는 "법흥왕 때 고래잡이가 금지돼 사라진 고래기름이 흘러 들어오면서 생기는 사건처럼 당시 특징적인 제도나 유물로 이야기를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주인공 자은을 비롯한 등장인물도 박물관의 유물이나 역사 기록을 보면서 '이걸 사용하던 사람은 누구였을까'를 상상한 끝에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독자와 함께 달리는 것이 시리즈의 매력"

정세랑 소설가가 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설자은 시리즈 1권과 2권을 나란히 들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이미 3권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를 구상하고 있는 정 작가는 "다음에는 자은을 여러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정치적 격랑 속에 빠뜨릴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2권을 읽고 독자가 해 준 말들이 3권에 들어가지 않을까"라면서 "이렇게 함께 달리는 것이 시리즈물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정 작가는 자은의 조력자이자 식객인 '목인곤'을 "어제도 오늘도 없는 인물"로 설정했다가 1권이 나오고 그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아지자, 관련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는 "계획대로는 아니지만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같이 만드는 느낌이 재미있다"고 귀띔했다.

경북 경주시 월성 해자의 풍경. 해자는 적을 막으려 성벽 외곽에 만든 구덩이에 물을 채워 놓은 인공 연못이다. 경주시 제공
정 작가는 소설을 읽고 통일신라에 관해 찾아보거나 경주를 찾는다는 독자의 반응 역시 창작자로서 기쁘다고 했다. 그는 "경주시 남천에서 월성 해자를 구경하고 첨성대까지 걸어간다면 자은과 인물들이 뛰어다니는 길을 함께 걷는 셈"이라고 추천했다. 그러면서 "다른 시대를 다룬 작품은 '함께 멀리 가자'는 권유인데 독자들이 마음을 열고 멀리 와줘서 감사하다”라고 덧붙였다.
설자은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10권까지 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던 정 작가는 이 시리즈를 '본진'으로 삼을 계획이다. 그는 "꼭 쓰려는 현대물이 있어 그 작업을 하고 다시 (설자은 시리즈로) 돌아올 것"이라면서 "신문왕 시대부터 효소왕, 성덕왕까지 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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