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외모 등 남과 다른 모습의
청소년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들
"상처 딛고 당당하게 나아가길"
편집자주
책이 외면받는 시대에도 곳곳에서 영업을 이어가는 다채로운 독립서점은 독서를 위한 전초기지입니다. ‘전혼잎의 독립서점’에서는 한국일보에서 문학을 담당하는 전혼잎 기자가 ‘문학’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큐레이션합니다. 자주 들러서 읽어주세요.

게티이미지뱅크
청소년 시기에는 유독 남과 다른 나의 모습에 움츠러들기 쉽다. 외모부터 성적, 가정 환경 등 주변과 다른 면모가 자칫하면 또래 사이에서의 소외를 부를 수 있어서다. 여기에 문학의 역할이 있다고 말하는 청소년 소설 3권이 나왔다. ‘남다른’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다. 소설들은 이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남과 다른 모습이 개성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이끈다.
부르카 쓴 여고생 밴드 '부르카 유랑단'

부르카 유랑단·박혜영 지음·아무책방 발행·252쪽·1만6,000원
박혜영 작가의 소설 ‘부르카 유랑단’에서는 인도 출신 고등학생 '샤르마'가 등장한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일하는 아빠 때문에 한국으로 왔다. 샤르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이슬람 전통 의상 부르카를 쓴다. 그는 한국에서만이라도 부르카를 벗고 싶지만, 아빠는 신변 보호라는 명목으로 이를 강요한다.
학교에 가기 전 몰래 부르카를 벗으려 들른 화장실에서 샤르마는 따돌림을 당하는 ‘아란’과 마주쳐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둘과 엄마가 베트남인인 ‘자옥’, 우울증이 있는 ‘지호’는 음악 밴드를 결성한다. 밴드명은 부르카 유랑단이다.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샤르마를 위해 이들은 부르카를 무대 의상처럼 함께 맞춰 입고 공연을 한다. 검은 부르카 위에 저마다의 리본과 고양이, 해바라기, 나비 모양의 머리띠 등으로 개성을 드러낸다. 밴드는 노래한다. “나쁜 일은 잊어버려, 내일은 다시 새로워질 거야”라고.
아이들에게 부르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을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숨기는 도피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잠시일 뿐, 영원히 숨은 채로 지낼 순 없다는 사실을 이들은 깨달아간다. 박 작가는 “절대 만만하지만은 않은 세상 속에서, 꿈꾸는 밴드 부르카 유랑단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을 밝혔다.
북한에서 온 청소년 간첩 '내 임무는 수능 만점'

내 임무는 수능 만점·성실 지음·메이드인 발행·232쪽·1만4,800원
고등학교 3학년으로 위장한 남파 간첩 ‘리혁’이 주인공인 성실 작가의 소설 ‘내 임무는 수능 만점’은 제목에서부터 이야기를 유추할 수 있다. 리혁의 임무는 대한민국의 초미의 관심사인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후 언론 인터뷰에서 “남쪽에서 사는 게 너무나 힘들다”라고 말하고 북한으로 돌아오는 것.
‘민준’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임무에 나선 리혁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국어 영역의 ‘문학’이다. 소설과 시를 읽고 느낀 바를 솔직하게 답하지만 번번이 정답을 비껴간다. 사사건건 간섭하며 끼어드는 같은 반 ‘안용’도 골칫거리다. 설상가상으로 임무를 돕기로 한 ‘중간 동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서도 리혁은 틈틈이 자기만의 버킷리스트를 적는다.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하는 간첩이기 이전에 청소년인 그는 임무 수행과 별개의 비밀 목표가 있다. 학교 생활뿐 아니라 가짜 가족과의 생활을 철저히 즐기겠다는 지극히 평범한 10대의 꿈. 성 작가는 북한에서 온 청소년 간첩인 리혁을 두고 “현실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캐릭터지만, 모든 아이는 결국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하고 성적을 고민하는 평범한 면모를 지녔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사라지고 싶은 소년의 '정신적 승리'

정신적 승리·김송은 지음·스피리투스 발행·284쪽·1만5,800원
코로나바이러스 후유증(PCM)으로 드디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됐다. 김송은 작가의 ‘정신적 승리’에서 어머니가 태국인이라는 이유로 인종 차별에 시달리던 고등학생 ‘승리’는 코로나를 앓고 난 이후 몸이 마치 보호색처럼 변한다. 엄마와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고 의심하는 현실에서 사라지고 싶던 그에게 이 후유증은 오히려 반갑다.
승리는 남들보다 큰 체격으로 무시당하는 친구 ‘하마’와 함께 괴팍한 노인의 서재 정리를 돕게 된다. 그곳에 산처럼 쌓인 책을 읽으며 승리는 성장한다.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와 기형도의 시 ‘엄마 생각’ 등은 그에게 웃음과 눈물, 위로가 된다. 그러나 노인의 실종에 이어 하마도 자취를 감추면서 승리는 실종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몰린다.
‘정신적 승리’는 김 작가의 두 번째 청소년 소설이다. 김 작가는 앞서 수능 마지막 6교시에 인성 영역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지구에서 추방되는 내용의 '6교시 인성 영역'을 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 작가는 “어떤 이유로든 타인에게 함부로 취급되면 안 되는 고귀한 정신이 있고, 그것은 주인공처럼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나거나 다른 환경의 사람이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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