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나의 폴라 일지' 낸 김금희 작가
취재기자 자격으로 남극 세종기지 방문
"인간 힘 합쳐 살아내는 과정 몸소 체험"

남극 경험을 담은 산문집 '나의 폴라 일지'를 낸 김금희 소설가가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책과 남극을 대표하는 펭귄 인형을 들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지구상에서 어느 한 나라의 주권이 온전하게 미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땅, 남극에 관한 소설을 ‘애절하게’ 쓰고 싶어요.”
‘미지의 대륙’ 남극에 다녀온 소설가 김금희는 5일 서울 마포구에서 한국일보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2월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취재기자 자격으로 한 달을 머무른 그는 당시 경험을 고스란히 담은 산문집 '나의 폴라 일지'를 최근 펴냈다.
반평생을 꿈꾼 남극에 다녀온 그는 “궁극적으로 남극이라는 공간에 매혹당하고 사랑하게 됐기 때문에 더더욱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그간 남극이 배경인 소설을 쓰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던 김 작가가 생각하는 남극의 매력은 ‘없는 것’이었다. 그는 “남극에는 문명이 없다. 문명의 완전한 대척점에서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주인이 아닌 땅에서 김 작가는 겸손해졌다. 그는 “태어난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펭귄과 남극에서 지내려 잔뜩 옷을 껴입은 자유롭지 않은 내 모습을 비교하며 겸허해지는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남극의 기후와 해양, 생물 등을 연구하는 과학기지의 ‘이상한 관찰자’가 된 그의 삶은 이전과 달라졌다. 무엇보다 남극은 “2인 1조가 아니면 기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공동생활이었다”라고 그는 귀띔했다. 작가로서 홀로 일하는 것이 익숙했던 그는 남극에서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 온 연구자를 비롯해 요리와 시설 관리 등 각자의 일을 하는 이들과 부대끼면서 “인간이라는 개체군이 우르르 무리 지어 다니며 힘을 합쳐 살아내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경이로운 자연에 집중됐던 그의 시선도 “세종기지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일상”으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김금희 '나의 폴라 일지'의 표지. 한겨레출판 제공
특히 끼와 열정이 넘치는 과학자들이 김 작가를 사로잡았다. 남극좀새풀, 우스네아, 솔이끼, 클라도니아 등 낯선 이름의 식물을 줄줄 외우고 빙산, 유빙, 구름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사람들. 김 작가는 “세종기지에서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분들은 남극의 미미한 변화에 관심이 있다”며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성실히 모은다는 면에서 (기초과학이) 문학과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학자가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소설로) 제대로 그려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완전한 행복감’을 준 남극에서 위기감도 느꼈다는 그다. 김 작가는 “남극에 가는 절차가 까다롭다고 여겼는데, 가보니 그 이유를 알았다”면서 “인간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관광으로 남극에 온 방문객에게는 이런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또 심각한 수준에 이른 기후 위기도 목도했다. 김 작가는 “몇 년 사이 얼음이 많이 녹아 계곡처럼 물이 흐른다”며 “남극도 원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 강조했다.
이는 그가 ‘나의 폴라 일지’를 “10대가 많이 읽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품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김 작가는 “이전의 작품이 주로 성인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 책은 다음 세대를 살아가야 하는 청소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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