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 대신 매킨리 앞세운 트럼프
21세기의 지정학 중요성 다시 일깨워
미중 경쟁에서 한국만의 강점 찾아야

6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미국 영사관 앞에서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주민을 가자지구에서 이주시키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획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
필자가 과거 체류하던 미국 미주리주에서 남서쪽으로 세 시간가량 달리면 오클라호마주에 도착한다. 주의 닉네임 'The Sooner State'는 서부개척시대 땅을 차지하기 위한 특별한 역사를 상기시킨다. 서부로 향해 인디언을 몰아내며 빨리 토지에 울타리를 치는 사람이 임자다. 법과 질서가 정착되기 전에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선점이 중요하며 재산은 보안관보다는 스스로 지켜야 하는 카우보이들의 생존 법칙이 21세기에 회귀했다.
트럼프 취임 3주 만에 총잡이들이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서부개척시대가 오버랩되는 것은 지정학에 대한 신임 대통령의 독특한 판단 때문이다. 취임식 관련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팽창(expansion)'이었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걸렸던 32대 루스벨트 대통령 초상화를 빼고 대외 팽창의 상징인 7대 잭슨 대통령 초상화로 교체했다. 1898년 하와이를 병합한 미 제국주의의 화신인 매킨리 대통령도 전면에 내세웠다.
영토를 확대하는 팽창은 트럼프 행정부 대외관계의 화두가 되었다. 제국주의시대 유럽 열강들이 경쟁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경영하던 오랜 역사가 돌아왔다. 취임사에서 파나마 운하에 대한 미국의 관리권을 강하고 길게 주장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의사도 재확인했다. 캐나다는 51번째 주로 편입하라고 조롱했다. 플로리다주 남측에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명칭을 바꾸고,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소유하겠다고 선언했다. 전 지구를 들쑤셔 놓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황금기가 도래했다고 주장하지만 주로 힘 약한 국가들을 압박하여 미국의 국가이익을 챙기는 신제국주의적 행태는 전성기가 지난 늙은 보안관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21세기 글로벌 AI 시대에 19세기 개념인 영토를 강조하는 트럼프의 행태는 역설적으로 지정학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준다. 지정학은 국제정치의 핵심 개념이었으나 21세기 우주항공기술에 기반한 인터넷 시대에 소홀히 취급된 측면이 있었다. 지정학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은 저서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2021)에서 미국은 영토와 인구 증가로 강대국을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분쟁 전문기자인 팀 마샬도 저서 '지리의 힘 2'(2022) 서문에서 '신이여 어찌하여 우크라이나에 산맥을 두지 않으셨습니까?'라고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취약성을 한탄했다.
한국의 지리적 취약성은 정평이 나 있다. 주변 4대 강국으로 둘러싸인 반도국은 대륙과 해양세력의 충돌 무대다. 팀 마샬도 한국이 반도국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망국의 고통을 다시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반도 2,000년 역사에서 대륙세력이 1,800년, 해양세력이 200년 동안 주도권을 차지한 것은 지정학의 충돌이었다. 슈퍼 MAGA 시대가 한반도 지정학을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블랙 스완(black swan) 지도자의 출현이 우리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악마의 거래도 가능하나 그렇지 않다면 동맹도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방치될 수 있는 만큼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자세가 필요하다.
미중 갈등 시대에 한국이 지경학과 지정학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미중 양측이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경쟁력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 노후화된 미 해군 함정의 개보수를 포함한 조선업은 한미 간에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 중국 역시 공급망 체인에서 기술력으로 무장한 한국을 빼놓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전대미문의 영토 팽창이라는 혹한기에 강소국 한국이 생존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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