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트럼프와 해리스의 ‘건곤일척’ 대결의 흐름을 미국 내부의 고유한 시각과 키워드로 점검한다.
<24·끝> 불안한 한미동맹의 미래
한미 모두의 문제 '정치 양극화'
외국서도 대립하는 한국 정치
초당적 절제된 대미외교 필요

한국어로는 양극화로 번역되는 'Polarization'이라는 단어가 2024년 메리엄-웹스터 사전 지정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메리엄-웹스터 사전 지정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한국어로는 양극화로 번역되는 'Polarization'이라는 단어가 2024년 메리엄-웹스터 사전 지정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한국과 미국 상황을 고려하면, 두 나라 모두 정확한 선정이었다. 요즘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 정치인들은 사적인 대화에서도 한국의 상대 정파를 비판하기 바쁘다. 이는 당연히 선진 민주주의 국가 정치인들의 행동이 아니다. 필자가 미국 정치권에서 처음 배운 격언은 보수적이고 고립주의적 성향의 상원 외교위원장 아서 반덴버그가 한 말이었다. 그는 "미국 정치인은 바다를 넘어가면 정치 싸움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 나가서는 미국 내부의 싸움을 멈추고 모두 하나의 목소리로 미국을 대표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본 정치인들에게서는 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 자민당이 1955년 이래 거의 지속적으로 집권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민당 내 여러 파벌은 미일 동맹 지지에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덕분에 일본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주요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최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방미 행적도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인상 요구에 불만을 품고 있는 반면, 일본은 2025년 방위 예산을 590억 달러로 10.5% 인상했다. 게다가 일본도 아닌 미국령 괌의 미군 기지 건설에 28억 달러를 지원키로 하는 등 미국에 호응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왼쪽)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면서 악수하고 있다. AP
트럼프 행정부 등장으로 워싱턴에서 한미동맹은 향후 4년 동안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두 나라 군인이 함께 피를 흘린 역사는 별 의미가 없다. 미국의 '철통같은' 방위 공약이나, 한국이 동아시아의 '핵심 맹방'이라는 표현도 중요치 않다. 실제로 뉴질랜드는 핵무기에 대한 시각 차이로 미국과의 동맹 반열에서 밀려난 상태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 차관 지명자의 주장대로, 한국이 안보영역에서 미국과 '관점의 비대칭'을 고수하면서 뉴질랜드와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바보 같은 행동"이라는 영어 속담이 있는데, 워싱턴 조야에서는 북한과 교류하려는 역대 한국의 움직임을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 트럼프 시대에 맞춰 스스로의 발판을 찾고, 전통적 동맹국으로 제공했던 것 이상의 뭔가를 제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방안은 뭘까. 아마 동유럽 에스토니아가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 나토 동맹국에 제공한 전문성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나토의 '사이버 전쟁 부대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는데, 한국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이러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북한 해커들이 초래하는 사이버 위협이 커지는 실정에서 해당 분야에서 한국의 공헌은 한미 동맹 강화에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주요 7개국(G7) 반열에 오를 자격을 입증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소극적 대응 때문이다. 문재인과 윤석열 정부 모두 이 전쟁을 K방산의 잠재적 수요처 혹은 전후 재건시장이라는 경제적 기회로만 인식했다. G7 같은 공동체에서는 미국의 안보 정책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 한국은 이를 해내지 못했다.
한국은 미국이 중시하는 정책에 동의하지 않거나, 때로는 70년 동맹이 어떻게 유지됐는지 의심할 정도로 이상한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2022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채택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그렇다. 당시 한국의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 모두 해당 법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배신', '등에 칼을 꽂은 것'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또 한국 정치인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는데도, 수정 요청을 위해 워싱턴으로 몰려왔다. 그런데 결국 한국 대기업들은 IRA 덕분에 큰 이익을 얻었고, 이제 한국은 그 법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식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한국의 안보지형을 크게 바꿀 수 있으며, 한국도 부정적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 대응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특히 트럼프는 한국인들이 모욕감을 느끼는지 여부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 IRA에서처럼 한국이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면 그건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반덴버그 위원장의 지적처럼, 대미 외교에서는 냉정하고 절제된 초당적 대응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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