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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고 싶었다" '로잔 우승' 박윤재… 세계 발레 매혹하는 K발레리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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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고 싶었다" '로잔 우승' 박윤재… 세계 발레 매혹하는 K발레리노들

입력
2025.02.12 20: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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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발레단 주역 꿰차고 콩쿠르 석권
김기민·최영규·안주원·박건희 등 활약
여성 예술 편견 깨고 'K발레 전성기' 영향

발레리노 박윤재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예고 내 서울아트센터에서 로잔 발레 콩쿠르 우승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발레리노 박윤재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예고 내 서울아트센터에서 로잔 발레 콩쿠르 우승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다리가 굵어 몸이 무거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라 콤플렉스였는데, 로잔에 가니 오히려 다리가 예쁘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로잔 콩쿠르) 그랑프리는 발레와 저를 더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됐어요."

한국 발레리노로는 처음으로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우승한 박윤재(17)가 12일 재학 중인 서울 종로구 서울예고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승 사실이) 믿기지 않아 매일같이 받았던 상을 다시 꺼내 보고 있다"며 "내 이력으로 남고 가슴에 자랑스럽게 달 수 있는 이름표가 될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잘하자는 마음이 아닌 후회 없이 즐기고 오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고 콩쿠르 당시를 돌아봤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묻는 질문에도 "즐기자는 생각으로 연습해 온 길을 의심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답했다.

박윤재는 다섯 살 때 누나를 따라 발레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발레리노의 꿈을 키운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학원 원장의 권유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영재원) 입학을 준비하면서부터다.

박윤재는 "콤플렉스였던 굵은 다리로 칭찬을 들으면서 나만의 매력으로 가슴을 울리는 춤을 표현하는 게 중요함을 느꼈다"며 "생긴 모양은 다 다르지만 각자 찬란하게 빛나는 매력이 있는 별과 같은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로잔 콩쿠르는 만 15~18세가 참가하는 대회로 입상자에게 세계적 발레단과 발레학교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차세대 스타 발굴의 장이다. 한국인으로는 1985년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최초로 입상했고 2005년 김유진, 2007년 박세은이 우승했다.

북미와 유럽에서 날아오르는 한국 발레리노들

발레리노 박윤재가 8일 스위스 로잔 볼리외 극장에서 열린 제53회 로잔 발레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파리의 불꽃'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로잔=EPA 연합뉴스

발레리노 박윤재가 8일 스위스 로잔 볼리외 극장에서 열린 제53회 로잔 발레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파리의 불꽃'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로잔=EPA 연합뉴스

이번 박윤재의 우승은 한국 공연 시장에서 발레 장르의 비중이 커지는 가운데 들려온 소식이어서 더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발레리노보다 발레리나에게 무게 중심이 쏠려 있던 한국 발레계에서 남자 무용수들의 약진이 눈에 띄는 요즘이다. 김기민(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최영규(네덜란드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안주원(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등 한국인 발레리노들은 세계로 날아오르고 있다. 차세대의 잠재력도 크다. 지난해 4월 한예종에 재학 중인 발레리노 박건희(19)가 미국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AGP) 콩쿠르에서 대상인 그랑프리를 받았고, 10일 유럽의 로잔 콩쿠르에서 박윤재가 우승했다.

지난해 4월 미국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은 발레리노 박건희. 한국예술종합학교 제공

지난해 4월 미국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은 발레리노 박건희. 한국예술종합학교 제공


영상 보며 국제 무대 꿈 키운 '김기민 키즈'

발레리노 김기민(왼쪽)과 전민철. 국립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발레리노 김기민(왼쪽)과 전민철. 국립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 제공

한국 발레리노들이 눈에 띄게 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발레 저변 확대로 '발레는 여성의 예술'이라는 편견이 깨졌다. '젊음의 예술'인 발레는 일찍 시작할수록 재능을 발굴하기에 유리하지만 과거에는 중고교생이 돼서야 발레에 입문한 남자 무용수가 흔했다. 최근에는 달라졌다.

안윤희 서울예고 발레과 교사는 "(박)윤재가 입학한 해에 실력이 뛰어난 남학생이 많아 오랜 숙원이었던 남학생반 별도 운영이 처음으로 가능해졌다"며 "아들이 발레 대신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학부모는 최근엔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주현 한예종 영재원 주임교수도 "요즘 학부모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녀의 재능을 넓은 시야로 바라본다"며 "초3부터 고3까지 선발하는 영재원에서 과거엔 초3 남학생 선발이 흔치 않았는데 요즘은 초3, 4 남학생 지원자가 부쩍 많아졌다"고 전했다. 박윤재도 "(발레가) 어려울 때도 있었는데 부모님이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발레만 생각하라고 했다"고 했다.

국제 무대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달 등으로 어려서부터 해외 예술가들의 공연을 접하며 큰 꿈을 키울 수 있게 됐다. 박윤재도 "로잔 영상을 보면서 발레를 접했고, 배웠고, 꿈을 키웠다"며 "꿈꿔 왔던 무대에서 춤을 춰 영광스러웠다"고 말했다.

2010년 젊은 무용수의 해외 발레단 진출이 활발해진 'K발레 전성기'에 발레를 배운 '김기민 키즈' '박세은 키즈'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다. 김기민과 박세은은 각각 2011년 마린스키발레단과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해 현재 수석무용수로 활약 중이다. 박윤재가 롤모델로 꼽은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최영규의 입단 시기도 2011년이다. 김용걸 한예종 교수는 "선배 무용수들의 활약은 젊은 무용수들에게 세계 유수 발레단에서의 활약이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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