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다 킨 '전쟁과 개 고양이 대학살'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러시아 폭격으로 불타버린 차 앞에서 한 시민이 개를 안고 있는 모습. 키이우=AP 연합뉴스
전쟁에 대한 기록은 인간의 관점에서만 쓰여 왔다. 하지만 인간과 함께 살고, 전쟁을 경험했던 비인간 동물에 대한 기록과 역사는 철저히 소외돼 왔다. 전쟁 중 동물의 이야기가 담긴 수많은 기록에 기반해 동물도 존재했었고, 피해를 입었고, 전쟁을 견뎌내며 인간을 도왔다는 사실에 주목한 책이 나왔다.
동물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힐다 킨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6년의 전쟁 기간 동안 사람만 죽은 게 아니라 수많은 동물이 죽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전쟁 기간 영국에서는 공습으로 민간인 6만595명이 사망했고 8만6,182명이 치명상을 입었다. 하지만 전쟁 첫 주 4일 만에 사망한 개와 고양이는 40만 마리, 일주일 만에는 75만 마리에 달했다.
이는 적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주인이 내린 결정 때문이었다.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안락사를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전쟁 중 개와 고양이는 숨는 습성 덕분에 인간보다 훨씬 덜 다쳤다고 한다.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동물들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건 결국 인간"이라며 내 반려동물의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인간의 태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전쟁과 개 고양이 대학살. 힐다 킨 지음·오윤성 옮김·책공장더불어 발행·332쪽·2만 원
전쟁은 많은 동물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더 깊어지고 달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동물은 인간에게 감정적 도움을 제공하고,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책은 생존자들이 들려주는 안타깝지만 사랑스러웠던 전쟁 중 개, 고양이의 삶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전쟁 중 인간마다 동물을 얼마나 다르게 대했던가를 잊기보다는 기억하는 쪽을 선택할 것을 촉구한다. 이는 지금도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희생되고, 동원되는 동물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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