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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40년 전에는 '한반도 비핵화' 먼저 외쳤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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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40년 전에는 '한반도 비핵화' 먼저 외쳤다... 왜?

입력
2025.02.13 11:00
수정
2025.02.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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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제6차 남북회담문서 공개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해 9월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물질연구소를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해 9월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물질연구소를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우리는 민족이 멸살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조국 강토가 미국의 핵전쟁 마당으로 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김일성 북한 주석, 1986년 12월 31일 시정연설

핵 야욕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이 40년 전만 해도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철수를 주장하며 앞장서 한반도 비핵화를 외친 것으로 나타났다. 1983년 '아웅산 테러' 이후 국제사회에서 범죄자로 낙인찍힐 때다. 반면 남한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존재감을 뽐낼 때다. 남북 경쟁에서 수세에 몰린 북한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유화 제스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통일부가 13일 공개한 1984~90년 남북회담 문서(2,266쪽 분량) 내용이다. △남북경제회담 △남북국회회담 예비접촉 △남북체육회담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등의 기록이 담겼다. 남북회담 문서 공개는 윤석열 정부 들어 6번째다.

당시 북한은 '핵 보유국'을 과시하는 지금과 달랐다. △남측에 미군 핵무기 철수를 요청하고 △휴전선(군사분계선) 인근 장벽 철거를 요구하거나 △‘한반도 2국가 체제’를 부정하며 최근 북한의 주장과는 정반대였다. 북한은 지난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방벽을 설치하고,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켜왔다.

국제사회 문제아, 남한 손잡고 '궁지 탈출' 노려



1986년 9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서울아시안게임 개막식.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6년 9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서울아시안게임 개막식.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서에 담긴 1986년 12월 31일자 노동신문을 보면 김일성 주석은 최고인민회의 8기 1차 회의에서 "조선민족 멸살하고도 남을 핵무기를 남조선에서 철수하라"며 한반도 비핵화를 강력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남한에는 미군의 핵포탄과 핵지뢰 등 전술 핵무기를 배치해 대북 군사력의 열세를 뒤집던 때다. 다만 노태우 정부 들어 한반도 비핵화 선언(1991년 11월 8일)을 통해 남한은 주한미군의 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전량 철수했지만,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핵 개발에 속도를 내며 ‘뒤통수’를 쳤다.

이에 앞서 1989년 11월 15~20일 열린 남북 4, 5차 예비회담에서는 우리 측이 △합의서에 양국 국호 표기 △’총리회담’ 명칭 사용 등을 제안을 했는데, 이게 한민족이 아닌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오인시킬 수 있다며 되레 북한이 반대했다. 이듬해 1월 31일 통일각에서 열린 고위급회담 6차 예비회담에서는 휴전선에 설치된 남한의 콘크리트 장벽 등을 언급하며 ‘영구분열의 상징’이라거나 ‘두 개의 조선으로 조작한다’는 등 비난을 이어갔다.

이 같은 북한의 저자세 행보는 ①1980년대 들어 구소련이 흔들리는 등 사회주의 체제 위기를 느낀 가운데 ②국제사회 고립 탈출과 ③남북 협력 명분을 마련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1980년대 들어 북한은 경제성장이 더뎌지고 사회주의 체제의 위기에 직면하는 등 대내적 문제가 많았고, 대외적으로도 1983년 아웅산 테러사건 주범으로 지목돼 국제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상황이었다"면서 "궁지에 몰린 북한으로선 일단 남한 손을 잡고서라도 위기를 탈출하려고 했던 시기"라고 분석했다.

통일부는 남북회담 문서에 대한 접근의 편의성을 높이고자 기존 서울지역 4곳으로 한정돼 있던 열람 장소를 지방으로 확대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호남권은 전남 목포시 통일플러스센터, 영남권은 국회부산도서관에 남북회담 문서를 비치해 시민들이 직접 방문해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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