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예소연 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
프놈펜서 세월호 침몰 지켜본 세 친구
문학으로 참사에 관한 애도는 가능한가

게티이미지뱅크
어머니의 상을 치른 지 사흘째 되던 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당연히 안부를 물으리라 생각했던 친구 ‘혜란’이 건넨 “석이가 실종됐대”라는 한마디로부터 예소연 작가의 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는 출발한다.
친구 ‘석이’가 사라진 곳은 캄보디아. 휴대폰에 기록된 마지막 위치는 프놈펜 국제공항이다. 석이는 소설의 화자인 나(‘동이’)의 어머니 장례식에조차 오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틀어진 지 오래지만, 동이와 혜란은 실종된 그를 찾아 캄보디아로 향한다. “석이가 실종됐다면, 그것도 캄보디아에서 실종됐다면, 단연코 석이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프놈펜에서는

소설가 예소연. 현대문학 제공
세 사람에게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은 잊을 수 없는 장소다. 9년 전, 대학교 해외 봉사 프로그램으로 프놈펜의 ‘바울학교’에서 머무르던 셋은 당시 “온종일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며 처음 경험해 보는 끔찍한 무력감”을 겪었다. 세월호라는 단어 없이도 ‘침몰한 배’와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라는 언급만으로도 소설 안팎에서는 같은 고통을 떠올린다. 예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는 12일 한국일보에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프놈펜에 있었다”면서 “그 날을 여태껏 잊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예 작가는 “그때는 국가가, 시스템이 나를 보호해 주고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으나 일순간 그 모든 믿음이 깨졌다”라고 덧붙였다.
동이와 혜란이 프놈펜에서 석이를 찾을 수 있으리라 예감하는 까닭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삐썻’의 존재다. 두 사람은 석이가 바울학교 학생이었던 그를 만나러 갔다고 짐작한다. 프놈펜에서 만난 삐썻은 그들의 예상대로 석이의 행방을 안다. 과거 세월호 참사 소식에 “2010년에 프놈펜에서도 큰 사건이 있었다”라면서 꺼삑섬 물 축제 압사 사건을 이야기하는 삐썻에게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석이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동이 역시 “우리조차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사건을 캄보디아 사람이, 하필 그런 식으로 부려놓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바로 그 ‘꺼삑섬’으로 석이는 홀로 향했다고 삐썻은 전한다.
극복되지 않는 상실, 그럼에도 살아가기

영원에 빚을 져서·예소연 지음·현대문학 발행·148쪽·1만5,000원
다시는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사건들이 있다. 소설 속에서 석이가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이태원 참사를 겪고 “자꾸 집회 같은 곳에 나가”고 “정치색이 너무 짙어”진 사람으로 변모한 것은 세월호라는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이는 반복되는 사고에 “참사는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거야. 이렇게 잊히기만 한다면 말이야”라는 사실을 깨닫고, 과거에는 선을 그었던 꺼삑섬 참사를 애도하러 나선다. 또 그의 여정에 시차를 두고 동행하게 된 두 친구는 비로소 서로가 서로에게 빚진 존재임을 이해한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문학에 새긴 잔흔 역시 영원하다. “세월호 이후의 문학을 한다는 것은 애도의 윤리에 복종하는 동시에 끝내 애도 불가능성을 증언해야 하는 이중의 난제”라는 이소 평론가(‘영원히 숲에 머무를 수 없다면’·문장웹진)의 말처럼 문학으로의 애도는 불가능일지 모른다. 상실이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다. 예 작가는 그럼에도 “어떤 존재의 사라짐을 슬퍼하고 그 슬픔을 체화하다 보면 언젠가 그 일련의 과정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믿음을 전했다. 이는 그가 동이를 통해 “나는 수많은 상실을 겪은 채 슬퍼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거고 그것은 나와 관계 맺은 이들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일 테다.
202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예 작가는 단 두 권의 책만으로 존재감을 문학계에 뚜렷하게 각인했다. 지난해 발표한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은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이 됐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로 나온 ‘영원에 빚을 져서’는 그의 세 번째 책이다. 이제 막 5년 차 작가가 된 그는 자신을 “벌어진 일을 어떻게든 외면하려 애써보지만, 또 그것이 쉽게 되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앞으로 한국문학은 외면하지 못하는 그에게 빚을 지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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