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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서 일하다 사람 죽는다" 반도체특별법 제동 건 삼성전자 연구개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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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서 일하다 사람 죽는다" 반도체특별법 제동 건 삼성전자 연구개발자들

입력
2025.02.13 17:00
수정
2025.02.14 17:32
0 0

삼성 연구자들, 반도체특별법 공개 반발
"몰아서 일하기, 연구자 건강권 훼손"
"노동시간 줄이고 연구 인력 충원하라"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3일 연속 밤을 새운 날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엇박자로 뛰고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어지럽더군요.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라구요? 그게 가능할 것 같습니까. 우리는 사람입니다.

삼성전자 연구개발 노동자 한기박씨.

정치권에서 반도체 연구개발직군에 대한 주 52시간 규제를 풀어주는 '반도체특별법' 논의가 불붙은 가운데, 삼성전자 연구개발 노동자들이 직접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주 52시간을 초과한 '몰아서 일하기'가 실현될 경우 "노동자들의 건강은 크게 악화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또 반도체 연구개발직군에서 시작된 노동시간 규제 완화가 반도체 모든 직군과 게임 등 기타 산업으로 확산될 것이라 우려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해왔지만 최근 대만 TSMC 등 경쟁업체에 밀려 위기를 겪고 있고, 사측은 주 52시간 규제 완화를 해결책으로 요구하고 있다.

13일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광장의 요구에 반하는 반도체특별법, 문제를 말하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공동행동에는 양대노총과 함께 참여연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다. 토론회에선 삼성전자 연구개발 노동자들이 직접 참석해 반도체특별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012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14년 차 연구자로 일하고 있는 한기박씨는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를 통한 '몰아서 일하기'의 위험성을 토로했다. 한씨는 "(현장에서 법을 위반하면서) 연구개발 노동자들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며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바쁜) 피크기간이 수일에서 6개월까지 이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프로젝트가 끝나면 한 달, 두 달 동안 몰아서 쉴 수도 없거니와 설령 그렇게 쉰다 해도 과로로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진 않는다"고 전했다.

또 다른 삼성전자 연구개발 노동자 변희범씨는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 논의는 단순히 한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모든 노동자의 법적 보호 장치를 무너트리는 위기"라고 말했다. 변씨는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지금도 고과 평가라는 압박으로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연장 근로를 감내하는 동료들이 존재한다"며 "노동시간 유연화가 정식으로 허용된다면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추가적인 근로를 강요받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건설업계, 조선업계, 배터리업계, 소프트웨어 산업 등 다른 업종에서도 ‘산업의 중요성과 위기’를 내세워 주 52시간제 예외를 요구하고 있다"며 "특정 업종의 위기나 중요성을 이유로 전체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22년 7월 25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서 열린 '세계 최초 GAA 기반 3나노 양산 출하식'에서 관계자들이 웨이퍼를 공개하는 모습. 뉴시스

2022년 7월 25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서 열린 '세계 최초 GAA 기반 3나노 양산 출하식'에서 관계자들이 웨이퍼를 공개하는 모습. 뉴시스

의학적으로 주 52시간 규제 완화의 위험성도 지적됐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최민 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몰아서 일하기는 결국 '불규칙한 장시간 노동'이라는 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활동가는 2012년 한국 청년패널조사를 활용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노동시간이 주당 50시간 이상인 경우 스트레스와 우울, 자살사고 위험이 40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노동자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또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와 통계청 사망자료를 연계해 분석해보면, 45~52시간 근무자와 52시간 초과 근무자 자살률은 35~44시간 근무자 대비 각각 3.89배, 3.74배 높다고 주장했다. 최 활동가는 "반도체특별법 적용 대상을 '고소득 반도체 연구개발직군'으로 한정한다고 하지만 그들에게도 불규칙 장시간 노동이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라며 "고소득자라고 생명과 소득을 맞바꿀 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계는 반도체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해 오히려 노동시간을 줄이고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구자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보상을 보전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인력확충을 통한 연구개발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영미 한국노총 금속노련 정책기획본부장은 "현재도 주 52시간을 넘겨서 일하고, 야간노동으로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노동시간 단축과 야간노동 폐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혁진 민주노총 금속노조 정책부장은 "삼성전자 위기 원인은 기술자들의 경쟁업체 이직으로 인한 기술력 부족 때문"이라며 "반노동적이고 위계적인 기업 문화, 사업부 간 갈등, 줄서기 문화, 관리 중심의 인재 평탄화 등 삼성의 구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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