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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극복하라"고 하지 마세요... 사별한 이들을 위한 위로법

입력
2025.02.14 11: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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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카차토레, '견딜 수 없음을 견디기'

한 유가족이 대구지하철화재참사 22주기를 앞둔 12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기억공간을 찾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대구=뉴스1

한 유가족이 대구지하철화재참사 22주기를 앞둔 12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기억공간을 찾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대구=뉴스1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지난 일은 털어버리고 마음을 추슬러야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부교수인 조앤 카차토레는 딸이 죽은 지 넉 달밖에 되지 않은 어느 날,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친구는 "남은 자식들이 있음에 감사하라"고도 했다. 카차토레 박사는 치밀어 오르는 복잡한 감정에 펑펑 울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끝내 부치지 않을 편지를 썼다.

"난 영영 그 일을 극복하지 못할 테니, 제발 내게 그 길을 강요하지 마.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프고, 이렇게 슬퍼하다가 산산조각 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어. '이제는 털고 일어나야지' '그러면 안 돼'라는 말은 하지 마. 이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하지 마."

신간 '견딜 수 없음을 견디기'는 가까운 이와 사별한 사람들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어린 딸을 잃고 20년 넘게 심리치료사로 일하며 자신과 같이 사별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애도 작업을 해왔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상실의 고통을 겪은 사람의 몸과 마음의 치유에 필요한 지혜를 나눈다.

인간이 사별과 애도를 거치며 느끼는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도 잠시, 절망, 두려움, 불안감, 과도한 근심, 죄책감, 수치심, 외로움 등의 감정이 해일처럼 덮친다. 특히 "갑작스러운 죽음, 자살, 살인과 같은 죽음은 외상적 슬픔"을 유발한다. 사별한 이들은 "뿌리째 뽑힌 나무처럼 겁에 질리고, 큰 불안에 휩싸이며, 세상에 대한 믿음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거대한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서 인간은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저자는 이때 "괴로워할 용기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극복하라는 게 아니다. "통절한 슬픔을 외면하지 말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영혼의 어두컴컴한 밤 속에 머물라는 것"이다. 저자가 만난 수많은 내담자가 사별로 인한 고통을 부정하고, 회피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약물, 도박, 음식, 쇼핑, 운동, 자해 등에 몰두했다. 잘 먹고, 잘 자기와 같은 '자기 돌봄'을 사치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방치하는 경우도 흔했다.

저자는 그러나 힘들어도 "자신을 잠식할 것 같은 감정과 함께 머물기를 연습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견딜 수 없음을 견디기'가 치유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때 주변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심정을 "쉽사리 판단하려 하지 않고, 속내를 들어주며 이들과 함께 몇 번이고 심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주는 것"이다.

견딜 수 없음을 견디기·조앤 카차토레 지음·이영아 옮김·에트로 발행·260쪽·1만9,000원

견딜 수 없음을 견디기·조앤 카차토레 지음·이영아 옮김·에트로 발행·260쪽·1만9,000원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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