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관리사 종료 앞두고 연장하기로
가사관리사 받는 시급은 그대로 1만300원
운영비·퇴직금 붙어 이용료 1만6800원 ↑
이용자 넷 중 셋이 '월 소득 900만 원 이상'
'저렴한 돌봄' 거리 멀고 내국인 피해 우려도

아세안 국가 출신의 외국인 아이돌보미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가상의 장면. 그래픽=최나실·달리3
여러 논란 속에 지난 반년간 시범운영된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이 다음 달부터 이용 가격을 20% 올려서 연장된다. 갑작스러운 사업 종료로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게끔 하기 위한 조치지만, 당초 정부가 정책 취지로 밝힌 '저렴한 돌봄'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내국인 노동자 일자리 침해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아 '1,200명 규모 본사업'도 추진이 불투명하다.
이달 종료 예정이던 사업, 1년 연장하기로

지난해 8월 6일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노동자 100명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입국하고 있다. 이들은 4주간 특화교육을 받은 뒤 9월 3일부터 서울 시내 가정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4일 정부는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추진방향 및 향후계획'을 확정했다. 현재 근무 중인 필리핀 출신 가사관리사들의 근로계약기간을 12개월 연장하고, 체류 허용 기간은 앞선 입국 후 7개월을 포함해 총 36개월로 늘리기로 했다. 본래 시범 사업은 이달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이용 가정 만족도가 높고 상당수는 계속 이용을 원하는 점, 다른 고용허가제(E-9) 외국인 노동자 체류기간도 3년인 점 등이 고려돼 연장 결정을 내렸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은 2022년 오세훈 서울시장 제안으로 처음 논의가 시작돼, 정부 협의 과정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6개월 시범사업이 진행돼왔다. 필리핀에서 전문 교육을 받은 아이돌보미 100명이 입국했는데, 2명은 중도 이탈해 본국으로 송환됐고 현재는 나머지 98명이 서울 시내 180여 가구에서 일하고 있다. 이 중 개인사를 이유로 필리핀 복귀를 희망한 4명을 제외하고 94명이 계속 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3월부터 이용료 인상, 민간과 큰 차이 없어
사업 초반부터 최대 쟁점이던 '이용 가격'은 다음 달부터 인상된다. 필리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시급 1만30원)으로 기존과 동일하지만, 이용자가 내는 금액은 시급 1만3,940원에서 1만6,800원으로 오른다. 시범사업 기간에는 가사관리사들을 고용한 중개업체가 사실상 마진 없이 운영한 터라 일부 운영비를 더하고, 업체가 가사관리사들을 1년 이상 고용함에 따라 퇴직금 지급 의무가 생겨 비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가 당초 '저렴한 돌봄'을 명분 삼아 정책을 추진한 것을 고려하면, 인상된 요금과 민간 요금 간 별 차이가 없어 정책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온라인 가사도우미·아이돌보미 업체에서 확인되는 시급 수준은 1만5,000원~1만7,000원선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시범사업 이용자 가구 통계를 봐도, 조사 참여 112가구 중 82가구(73.2%)가 월 소득 부부 합산 900만 원 이상인 중상층이었다. 다만 서울시는 "이용 가정 부담 완화를 위해 연 70만 원 가사서비스 바우처를 제공하는 '서울형 가사서비스' 대상에 외국인 가사관리사 서비스도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동계 "이주 돌봄 정책, 전면 재검토하라"

노동건강연대, 민주노총,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등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 26일 서울시청 앞에서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연대회의'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시행 중인 서울시에 가사돌봄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정부가 당초 올해 상반기 중 전국으로 확대한다던 '1,200명 규모 본사업' 추진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 중인 것도, 결국 '이용 가격'을 둘러싼 딜레마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본격적인 사업 확대 시 임금 수준이 낮고 처우도 열악한 '내국인 가사도우미' 업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날 '(내국인) 가사관리사 자격증, 경력, 훈련 이력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전문성 향상을 지원할 계획'이라며 원론적인 구상만 발표했다.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최영미 위원장은 "서비스 이용가구 75% 이상이 월소득 900만원 이상이고 절반 가까이가 강남3구라는 점에서 강남특혜서비스"라고 비판하고, "정부와 서울시는 내국인 가사관리사 노동환경개선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고 조속히 이행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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