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자백강요와 증거인멸 공소시효 지나
피해자·유족,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 요구
"딸이 실종됐다고 생각해 30년간 애기 엄마는 문을 열어놓고 살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언젠가 찾아올 거라고 믿으면서요."
고(故) 김현정양의 아버지 김모씨
연쇄 살인범 이춘재에게 살해됐으나 경찰의 증거 은폐 탓에 30년 넘게 실종자로 처리된 당시 초등학생 고(故) 김현정양. 김양의 아버지 김모씨는 25일 기자회견에서 목이 메여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김양은 1989년 7월 경기 화성군 태안읍(당시 행정구역 기준)에서 발생한 초등생 실종 사건의 피해자다. 당시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김양의 유류품과 시신 일부를 확인했지만, 단순 실종 사건으로 축소 처리했다. 사건이 진상이 드러난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9년. 진범 이춘재가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뒤늦게 자백하면서였다. 김씨는 "가슴에 대못이 박힌 채 애 엄마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경찰이 그럴 수 있나. 자기 자식이면 그럴 수 있나"라며 흐느꼈다.
경찰 허위자백·증거인멸 등 위법행위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위법 행위로 피해를 본 이들은 김씨만이 아니다. 허위 자백, 증거 인멸 등 각종 위법 행위의 희생양이 된 피해 당사자와 유가족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총체적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피해자들은 25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사체 은닉 및 증거 인멸이 확인됐음에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조사 없이 사건이 마무리됐다"며 진실화해위가 조속히 진실 규명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피해자들은 진실화해위에 이춘재와 관련한 14건의 살인사건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1986~91년 △화성 일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허위 자백을 강요받은 경위 △살인 피해자 사체 은닉 △관련 증거 인멸 과정 등 수사 전반에 걸친 구체적 진실을 모두 밝혀달라는 게 핵심이다.
8차 사건 누명 쓴 윤성여씨도 동참
피해자들을 대표해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한 이들은 총 3명이다. 김현정양의 아버지 김씨, 8차 살인사건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20년 옥살이를 하다 최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윤성여씨, 9차 사건 용의자로 경찰의 강압 탓에 허위 자백을 했다 유전자(DNA) 검사 결과 풀려난 당시 19세 고(故) 윤모씨의 형이 그들이다. 윤성여씨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모든 잘못된 진실은 앞으로 바로잡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심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는 "총 14건의 사건 중 13건은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14건의 수사과정에서 총 2만명이 용의선상에 올랐고, 그중 적지 않은 수가 반인권적 수사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진실화해위에서 진상 규명과 함께 피해 회복에 적극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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