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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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기획재정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칭찬받을 일이 있다. 경제 성장률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기재부는 연말과 6월 말 두 차례 내놓는 성장률 예측치를 현실적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12월 기재부는 경제가 어둡다며 올해 성장률을 1.6%로 관측했다. 그해 11월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성장률로 각각 예측한 1.7%와 1.8%를 밑도는 수준이었다. 재정, 세제 등 경기 부양 정책 효과를 반영해 경제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던 다른 정부와 달리, '성장률 마사지'를 하지 않았다. 경기 인식이 정확해야 딱 필요한 경제 정책이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기재부가 올해 경제를 진단·전망할 때 핵심 키워드로 내세운 '상저하고'를 접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성장률 전망과 다르게 '객관적'이라고 보이지 않아서다. 추 부총리가 지난해 말 올해 경제를 예측하면서 공론화한 상저하고의 사전 속 의미는 '경제가 상반기에 내려가고 하반기에 올라간다'이다. 그런데 기재부를 포함한 많은 경제 주체가 상저하고를 주관적으로 다루고 있는 듯하다.
우선 현실 속 상저하고는 제각각 쓰이고 있다. ①상반기엔 경제가 저조하나 하반기에 크게 회복 ②상반기 부진 후 하반기 반등 ③하반기 경기는 상반기보단 낫지만 큰 차이 없음 등 크게 세 가지로 갈린다. 상저하고의 정의를 놓고 합의점이 없는 상황이다.
기재부는 상저하고를 조금 더 구체화하긴 했다. 추 부총리는 하반기 성장률이 1.7~1.8%로 상반기 0.9%의 두 배라고 예상했다. 다만 이 설명은 널리 공감받지 못하고 있다. 하반기에 1.8%를 성장해도 '하고'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쪽도 있어서다. 1%대 성장률이면 '상저하중' 또는 '상저하저' 아니냐는 식이다. 상저하고는 이미 정치·경제적 입장을 반영한 '오염된 표현'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경제 지표를 두고도 상저하고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정반대 해석이 나온다. 예컨대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감소한 7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자. 누구는 하반기 출발부터 주요 경제 지표가 동반 추락하면서 상저하고 달성이 쉽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런 입장은 이른바 '9월 위기설'을 불 지피는 토대이기도 하다.
정부는 생산·소비·투자가 이달부터 회복한다면서 상저하고 전망은 유효하다고 맞선다. 11개월 연속 감소세인 수출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상저하고는 물 건너갔다는 비관론과 다음 달 수출 반등을 바탕으로 하반기 경기가 나아진다는 낙관론이 부딪힌다.
이래저래 상저하고라는 용어가 혼란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상저하고를 각기 다르게 보는 데서 출발한 '천차만별 경제 진단'은 가라앉은 경기 회복을 위협한다. 특히 자신들이 예측한 대로 남은 연말과 내년 경제 정책을 설계하려는 정부보다 민간이 피해를 보기 쉽다. 다양한 기관의 경제 전망을 염두에 두고 경영 전략을 짜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기피하고 싶은 불확실성 확대를 겪을 수 있어서다.
혼란을 줄이는 건 결국 정부다. 하반기 성장률 전망치 1.7~1.8%는 여전히 도달 가능한지, 이 성장률만 달성해도 상저하고에 부합하는지 분명히 해줬으면 한다. 적어도 상저하고 논쟁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저하고라는 실체가 불명확한 유령이 우리 경제를 더 이상 배회하게 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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