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0년 전 6월 어느 날 더없이 추레한 몰골로 집에 돌아갔다. 2주 만이었다. 부모님은 내게 별일은 없었느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진도로 취재를 다녀온 때였다. 아직 뭍으로 올라오지 못한 열두 명의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던 곳이다.
이 악물고 뭐라도 해야 했던 수습 시절이었지만 그들이 지내던 진도체육관 안으로 발길을 옮긴 건 사실 몇 번이 안 됐다. 세월호 참사 발생 두 달 무렵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울고, 기다리고, 가슴을 치고, 때로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시신 수습 소식에 번뜩 몸을 일으키는 삶을 살았다. 되지도 않는 위로의 말로 그 앞에 서느니, 체육관 바깥에서 볕을 견디며 몇 시간이고 버티는 편이 나았다.
닷새쯤 지나 피부가 까맣게 타들어가자 가족들은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그들의 터전이나 다름없던 체육관 안 이불 위로 초대받은 나는, 되레 어리광을 피우며 위로를 받았다. '삼촌'이라 부를 정도로 마음을 열어준 이가 생길 때쯤 서울로 복귀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지만, 좋은 소식은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 그해 11월 수색 작업이 종료되고 세월호가 인양된 이후에도 그 열두 명은 살아서 가족 품에 안기지 못했다.
그렇게 열 번째 4월을 맞았다. 체육관 앞에서 땅에 발끝만 비비고 섰던 그때의 마음으로 휴대폰 속 그들의 이름을 검색했다가 지웠다가 한다. 가족을 잃은 비통함을 다 삭이지도 못한 채, 수많은 갈등에 얽혀 들어갔던 그들에게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후배의 참사 10주기 기사 속 유가족들의 사연으로 그들의 현재를 유추해볼 뿐이었다. '일부러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곳을 고르고 골라 이사했다'는 대목에선 맥이 탁 풀렸다. 별일이 없어도 만나 종종 술잔을 기울이던 희생자의 아버지에게도,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멀리한 나는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인연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글을 빌려 유가족들에게 조심스레 전하고 싶다.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많다는 것을. 부모님은 10년 전 내 행색에 가슴 아팠던 기억을 떠올리며, 생때같은 자식을 바다 속에서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겠느냐고 자주 되묻는다.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함께 찾았던 선배와 동기들은 그곳에서 만난 유가족과의 기억을 두고두고 곱씹는다. 비단 주변의 일만은 아니다. 길을 걷다 보면,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방과 차 뒤편에서 노란색 리본이 나부낀다.
정부에도 알리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참사의 교훈을 어떤 방식으로 새기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정부에 권고한 수십 가지 항목을 정부가 외면하는 동안, 2022년 이태원 참사, 지난해 오송지하차도 침수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해 집계된 해양 사고는 2014년보다 2.3배나 많은 3,092건이나 된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이야기 좀 그만하자'는 당신들에게. 세월호·이태원·오송 참사는 예고된 일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그만하려면 당신이, 당신의 가족이, 당신의 친구가 집을 나설 때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사회적 체계가 완성돼야만 한다.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