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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 말아달라"... 생존 해병들 윤 대통령에게 '특검법' 수용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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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 말아달라"... 생존 해병들 윤 대통령에게 '특검법' 수용 촉구

입력
2024.05.07 11:25
수정
2024.05.0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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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해병 2명 尹에게 공개 서신
"미안함 반복하고 싶지 않아" 호소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4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4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해병대 채모 상병과 수해 실종자 수색 작업 중 급류에 휩쓸렸다 구조된 생존 해병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채 상병 특검법' 수용을 촉구했다. 이들은 동료가 왜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진실을 알고 싶다"고 했다.

군인권센터는 7일 해병 예비역 2명이 전해 온 편지를 공개했다. 해병들은 서신에서 "눈 앞에서 동료를 놓쳤던 그때처럼,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미안함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두 사람은 △피해 복구를 하러 간 해병 대원들에게 아무 준비도 없이 실종자 수색에 투입시킨 사람은 누구인지 △가만히 서있기도 어려운 하천에 구명조끼도 없이 들어가게 한 사람은 누구인지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이어 "하나뿐인 아들을 맡긴 부모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건 나라의 당연한 책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편지에는 숨진 채 상병을 향한 죄책감도 담겼다. 지난해 7월 19일 채 상병과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은 무방비 상태로 급류에 휩쓸렸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살려달라던 전우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미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사고 후 채 상병을 맘껏 그리워할 수 없는 부대 분위기도 언급했다. 이들은 "정작 위험하고 무리한 작전을 지시했던 사단장과 여단장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자리를 지켰다"면서 "(채 상병 문제는) 이제 서로의 안위를 위해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가 됐다"고 털어놨다. 예비역 해병들은 아직 복무 중인 후임들을 걱정하기도 했다. "힘들다고 어디 말 할 데조차 없고, 죄진 것 없이 죄 지은 마음으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센터 측은 "국민의 분노를 가볍게 생각 말라"며 특검법 수용을 촉구했다. 특히 특검법 통과를 두고 '나쁜 정치'라고 비난한 대통령실을 두고 "나쁜 정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생존 해병대원 서신 전문


윤석열 대통령님께 드립니다.

필승, 저희는 해병대 제1사단 고 채아무개 해병의 전우, 예비역 해병 ㄱ, ㄴ입니다. 채 상병과 함께 군 생활을 했고, 채상병을 떠나보낸 후 만기 전역했습니다.

2023년 7월19일 아침, 저희는 호우 피해 실종자를 찾으라는 지시에 따라 하천에 들어갔습니다. 위험한 작전이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늘 그랬듯 함께 고생하고 다 같이 부대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채 상병은 저희와 함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날, 채 상병과 저희 두 사람, 그리고 여러 전우들은 무방비 상태로 급류에 휩쓸렸습니다. 저마다 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대다 정신을 차렸을 무렵, 사라져 가는 채 상병이 보였습니다. 살려달라던 전우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미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자고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날 이후 저희는 채 상병의 일을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간부님들, 동기, 후임들 모두 너무 힘들어 보였지만 서로 다독일 뿐, 사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내가 무너지면 다들 무너질 것 같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희는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일상을 찾아갔습니다. 조사를 나왔던 군사경찰 수사관님에게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얘기했으니 채 상병과 부모님의 억울함과 원통함은 나라에서 잘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채 상병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전우인 저희에게 남은 몫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채 상병의 죽음을 잊지 않고 제대로 기억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질 거라며 눈물을 참던 중대장님은 여단의 다른 보직으로 전출되셨고, 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던 대대장님은 보직해임 되어 떠나셨습니다.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위험하고 무리한 작전을 지시했던 사단장님과 여단장님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 자리를 그대로 지켰습니다. 뉴스에서는 사단장님이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겠으니 부하들을 선처해달라는 말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현실은 거꾸로였습니다. 모든 책임은 부하들이 지고, 선처는 사단장님이 받았습니다.

그 뒤로 9개월 동안 채 상병과 저희가 겪었던 끔찍한 일이 매일 뉴스가 되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이 걱정되어 꺼내지 못했던 채 상병 이야기는, 이제 서로의 안위를 위해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말하는 주제였지만, 저희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부대 분위기가 사나워 다들 쉬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병대를 이끄는 사령관님과 사단을 이끄는 사단장님이 다 엮인 일인데 어떻게 함부로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나마 곧 전역한 저희들은 취업과 복학을 해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사고를 같이 겪었던 후임들은 대부분 아직 부대에 남아있습니다. 아마 힘들다고 어디 말할 데조차 없을 것입니다. 저희가 그렇듯이, 그 친구들도 죄진 것 없이 죄 지은 마음으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두 달 뒤면 채 상병 1주기입니다. 채 상병을 기리는 자리에 사령관님, 사단장님 같은 분들도 아무렇지 않게 참석하시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자리에 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두려움과 분노를 견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채 상병을 맘껏 그리워하고, 솔직하게 미안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임들은 현역 군인이니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죄진 것 없이 죄지은 마음으로 다녀올 것입니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용기 내 대통령님께 보내는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대통령님.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해주십시오.

채 상병 특검법을 ‘죽음을 이용한 나쁜 정치’라고 표현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뉴스로 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희마저 채 상병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가 발생하고 벌써 9개월이 지났습니다. 이만큼 기다렸으면, 이제는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피해 복구를 하러 간 우리를 아무 준비도 없이 실종자 수색에 투입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울 만큼 급류가 치던 하천에 구명조끼도 없이 들어가게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둑을 내려가 바둑판 모양으로 흩어져 걸어 다니면서 급류 속에서 실종자를 찾으라는 어이없는 판단을 내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현장과 지휘 계선에 있었던 모두가 누구의 잘못인지 잘 알고 있는데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희와 채 상병 모두 내가 나고 자란 나라를 지키고자 남들이 말린 힘든 해병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이런 저희에게, 그리고 해병대를 믿고 하나뿐인 아들을 맡기신 채 상병 부모님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은 나라의 당연한 책무입니다.

저희는 정치에 별 관심 없었던 평범한 20대였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채 상병을 놓쳤던 그때처럼, 채 상병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미안함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용기 내 부탁드립니다.

대통령님.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희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부끄럽지 않게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24년 5월7일

대한민국 해병대 예비역 해병 ○○○, ○○○ 드림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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