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할인에 재정 투입 집중
물가 안정화 효과 제한적
국제곡물가 상승, 재정 여력 악화도 변수
재정을 풀어 고물가를 해소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초점을 잘못 맞췄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가격안정자금 지원에도 물가 불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꺼낸 돌파구가 또다시 재정 투입이란 점에서 벌써부터 효과가 제한적일 거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모든 수단을 강구해 장바구니·외식 물가를 잡겠다”며 “장바구니 물가는 큰돈을 안 써도 몇백억 원 정도만 투입해 할인 지원하고, 수입품 할당관세를 잘 운영하면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물가 해소 방안으로 언급한 재정 투입과 할당관세 확대 시행은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가 줄곧 시행해 온 정책이다. 기자회견 다음 날인 10일에도 정부는 할당관세 확대 방침을 밝혔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배추·당근·김 등 7종에 대해 할당관세를 새로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물가는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3월 물가 불안이 커지자 1,500억 원의 긴급가격안정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납품단가 지원에 755억 원, 할인 지원 450억 원, 축산물 할인 195억 원 등 대부분 재원이 당장의 가격을 낮추는 할인책에 집중됐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월과 같은 3.1%를 기록했고, 지난달에도 소폭 하락(2.9%)하는 데 그쳤다. 정부 할인 지원이 실제 물가를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하락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착시효과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벌써 1년 넘게 시행해 왔고 효과도 제한적인 정책을 해결책처럼 제시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각종 할인 지원에 나섰지만 공급량이 부족한 탓에 여러 농산물의 가격은 큰 폭으로 뛰고 있다. 사과‧배 가격은 여전히 높은 데다, 최근엔 다른 작물 값에도 불이 붙었다. 지난달 건고사리(상품) 1㎏의 생산지 가격은 7만8,604원으로 평년(2019~2023년)보다 43.7% 올랐고, 당근 1㎏ 소매 가도 한 달 전보다 30% 넘게 뛰었다. 양배추와 배추 가격 역시 크게 오르며 밥상 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올해에도 이상기후가 이어지며 생산량이 급감한 탓이다. 대외 여건도 호의적이지 않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달보다 0.3% 오르며 두 달 연속 상승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마냥 재정을 투입하기도 여의치 않다. 연초부터 3월까지 쌓인 나라살림 적자는 75조3,000억 원으로, 역대 1분기(1~3월)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지난해 기업 실적 악화로 법인세 등 세수 여건이 좋지 않은 것도 재정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돈을 풀어 모든 품목 가격 안정화에 나설 수 없는 만큼 유통구조 개선이나 기후변화 대책 마련 등 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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