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어떻게 나아지겠어요."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간호사 A씨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병원 안을 오가는 환자도 드물었고, 의료진 분위기 역시 종일 축 가라앉아 있었다. 전날 법원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에서 정부 손을 들어준 후에도 전공의들이 복귀할 조짐이 없어 앞으로도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A씨는 "전공의가 돌아올 생각이 없는데 뭐가 바뀌겠느냐"며 "남겨진 의료진은 그저 눈앞에 놓인 상황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의료계 요구를 법원이 외면하면서 현장 반발은 더 커지고 있다. 전공의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병원에서 고군분투 중인 의료진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며 항복 선언을 할 태세다. 위태로운 의료현장을 바라보는 환자들의 마음도 타들어가고 있다.
의사들은 의정갈등이 표면화한 이래 어느 때보다 격앙된 표정이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정부가 발을 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렸다"며 "16일 판결로 전공의가 돌아올 이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창민 전국의대교수비대위원장도 "혹시나 기대했지만 결국 의료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지 않는 판결이 나와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3일 총회를 열어 '일주일 휴진' 등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장을 지키는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도 "진짜 한계가 왔다"는 호소가 끊이질 않는다. 홍순철 고려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의료계 혼란이 5년은 지속될 것"이라며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근 병원 인력이 부족해 우리가 새벽까지 환자를 받는데, 전원이 반복되다 보니 산모가 위험한 순간이 많다"며 위태로운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이재갑 한림대 의대 교수 역시 "의료대란의 후유증은 몇 년 이상 이어질 것"이라며 "무기력하고 막막한 분위기에 교수들도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고 한숨 쉬었다.
환자들도 애가 타긴 마찬가지다.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 암병동에서 대기하던 오모(67)씨는 "몇 달 전 유방암 수술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진료를 받는데 3월부터 지금까지 주치의만 벌써 세 차례 바뀌었다"며 "병원이 위태로운 게 눈에 보여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토로했다. 순환기내과를 방문한 박모(67)씨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하지만, 언제 순서가 밀릴지 몰라 병원 예약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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