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정부 관계자·여당 의원들과
채 상병 외압 국면 최소 40차례 연락
범정부적으로 사건 관리했을 가능성
해병대 수사단이 해병대원 사망 관련 지휘라인의 범죄 혐의를 따져 경찰에 넘기고 있던 무렵,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실·정부·여당 고위관계자들과 수십 차례 연락(통화·문자메시지)을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전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과 세 차례 전화 통화를 한 다음 연락이 부쩍 잦았는데, 이른바 'VIP(대통령) 격노' 후 사태 수습을 위해 정부 고위관계자 등이 긴박하게 움직였던 정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9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항명죄 재판과 관련해 중앙군사법원에 제출된 통신사실조회회신 결과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28일부터 8월 9일까지 대통령실·정부 고위관계자들, 여당 의원들과 최소 40차례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해당 기간엔 ①이 전 장관의 수사기록 경찰 이첩 보류 지시(7월 31일) ②국방부 검찰단이 경찰로부터 수사기록 회수(8월 2일) ③국방부 조사본부의 채 상병 사망사건 재검토 착수(8월 9일)가 이뤄졌다.
이 전 장관이 받은 연락 중 30번은 8월 2일 오후 3시 이후에 몰렸다. 윤 대통령은 같은 날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이 전 장관에게 세 차례 전화를 걸어 18여 분간 직접 통화했다. 그 이후 통화가 집중됐다는 것은 윤 대통령의 뜻에 따라 국방부 등 관계부처가 사태 수습을 위해 긴박하게 연락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이 전 장관의 연락 대상은 대부분 대통령실 인사들이었다.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은 지난해 8월 4~7일 이 전 장관과 일곱 차례 통화와 한 차례 문자를 주고받았다. 김 처장은 군 복무 시절 이 전 장관과 친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진 만큼 사태 해결을 위해 이 전 장관에게 조언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조태용 전 실장, 김태효 1차장, 임종득 전 2차장도 각각 한두 차례씩 이 전 장관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임기훈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은 윤 대통령이 채 상병 사건 수사 보고를 받고 '격노'한 의혹이 제기된 지난해 7월 31일 오후 3시경 이 전 장관과 11분가량 통화했다.
이밖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4~7일 다섯 차례 통화와 세 차례 문자를 주고받았다. 이 장관은 행안부 소속 경찰청에 지휘·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 사건에서는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자료를 다시 돌려받는 문제 때문에 소동이 빚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지난해 8월 2~6일 이 전 장관과 세 차례 통화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지난해 7월 28일 이 전 장관과 네 차례 연락을 주고받는 등 여당 의원들과 이 전 장관 간의 통신 기록도 남아 있었다.
통화 경위에 대해 이 전 장관의 법률대리인 김재훈 변호사는 "당시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지난해 8월 1~12일) 지원과 관련해서 (한 총리 등과) 대화를 나눴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 기록에 대해서는 "시간관계상 박 대령에 대한 항명죄 수사 및 인사 조치 검토 지시와는 무관하다"고도 했다.
이 전 장관 측 해명대로 업무 범위가 광범위한 국방부 장관의 모든 통화가 '채 상병 사건'에만 국한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당시 윤 대통령의 반응이나 대통령실·국방부의 분위기로 미뤄볼 때 이 중 상당수 통화는 해당 사건 수습을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일 수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 전 장관 등을 상대로 통화한 이유나 통화 내용 등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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