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절반 이상 사직 처리
일반의 취직, 의사직 포기도
필수과 인력 축소 우려 커져
각 수련병원이 전공의 사직서를 수리하면서 수천 명에 달하는 미복귀 전공의 중 일부가 미용병원 등 일반의 취직을 시도하거나 외국 의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공의가 한꺼번에 취업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경우 의료 현장에 적지 않은 혼란도 예상된다.
개원가 시장 왜곡 우려
2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8일 기준 전체 전공의 1만4,531명의 56.5%인 7,648명이 수련병원에서 사직 및 임용 포기로 처리됐다. 대다수가 의대 정원 확대라는 정부 입장에 반대해 복귀를 거부했지만 병원에 돌아가더라도 수련 과정을 제대로 마칠 수 없을 거란 판단을 한 이들도 있다. 전공의 A씨는 "수련 과정은 도제식으로 이뤄지는데 지금 돌아가도 다른 전공의 선배들이 없으니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복귀를 거부한 전공의들은 대체로 미용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일반의 자리를 구하고 있다. 전공과 연차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수련을 완전히 마치지 않는 상태에서 취직할 수 있는 병원에 제한이 있어서다. 전공의가 대거 개원가로 쏟아져 나올 경우 시장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전공의 공급이 느는 만큼 미용병원 등의 연봉 수준이 갈수록 더 낮아질 거란 예측이다. 실제 이미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공의 B씨는 "최근 미용병원 쪽으로 인력 공급이 늘어나면서 받는 급여가 기존 대비 반토막 났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래도 기존 전공의 월급보다는 여전히 두 배 이상 많다"고 덧붙였다.
개원가에서는 사직 전공의들을 대거 채용할 경우 수련병원과의 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는 고민도 내비치고 있다. 이에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서울시의사회 측에 "사직 전공의들이 개원가에 취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 전공의들도 있다. 인턴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 중인 C씨는 "현 상황이 나아질 거란 기대가 없다 보니 미국의사 자격 시험을 준비하는 전공의들이 많다"며 "대학에서 배웠던 용어들이 애초 영어인 데다 진입 장벽도 그렇게 높지는 않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정책에 회의감을 느껴 아예 의사직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견됐다. A씨는 "의대 수석 졸업까지 했는데 잠시 쉬기로 했다가 전업 주부가 된 친구가 있다"고 전했다.
필수의료 붕괴 우려 높아져
일단 의사단체들은 일자리 구하기에 나선 전공의들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홈페이지에 구인구직란을 만들어 전공의들과 1, 2차 의료기관을 이어줄 예정"이라며 "경제적으로 사정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선 모금도 지원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 역시 "현재 인건비 때문에 개원가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선후배가 서로 마음을 나누고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들은 이번 사태로 필수과의 의료공백이 더 늘어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미용병원 등으로 전향하거나 의료 인력 일부가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기피과 지원은 더 축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엄중식 가천대학교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공의들이 기존 월급의 두 배 이상을 주는 피부나 미용병원으로 빠져나가고 복귀가 안 되면 우리나라의 필수과는 없어지는 것"이라며 "감염내과의 경우 전국에서 매년 15명 정도 지원하는데 그마저도 줄어드는 상황이다"고 한숨을 쉬었다. 홍기정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지금도 응급실에 남아 있는 의사가 교수 서너 명뿐"이라며 "수도인 서울마저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필수의료 공백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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