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경쟁이 벼랑 끝 승부로
극단적 대립과 투쟁 가열
대통령제 근본적 한계 봉착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2020년 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대선 도전 여부를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할 때였다. 차기 주자 지지율은 높지만 검찰총장 출신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검찰의 오랜 전통 때문에 관측이 엇갈렸다. 검찰 출신인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렇게 전망했다. “정권(당시 문재인 정부)이 총장과 그 가족에 대한 수사로 압박하면 대권 도전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총장에서 물러나 민간인 신분이 되면 수사를 방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선에 나설 것이란 함의였다. 윤 대통령의 실제 동기가 무엇이었든, 그의 예측은 맞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3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곧바로 6월 인천 계양을 재보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8월 당대표 선거에 나설 때였다. 대선 패배자가 아무런 자숙 시간도 갖지 않은 채 정치적 재기에 나선 것부터 상식과 관례를 벗어났고 연고지도 없는 곳에 출마한 모양새도 좋지 않았다. 급기야 당권 장악까지 나서자 당 안팎에서 말들이 많았다. 길게 보면 이 대표의 차기 대권 도전 플랜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민주당의 전반적 지지세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당시 한 민주당 관계자의 분석은 이랬다. “이재명에 대한 수사가 전방위로 압박해올 것이기 때문에 자숙기를 가질 여유가 없다. 지금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의 지지율 영향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국회의원직과 당권까지 잡아야 검찰 수사를 방어할 수 있고, 그래야 차기 대권도 노려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역시 그의 분석이 맞았다. 자숙기 운운하며 거론했던 정치 도의는 작금의 정치에선 순진한 허울에 불과했다. 실제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는 전방위적으로 몰아쳤다. 이 대표가 그때 당대표가 되지 않았다면 진작에 정치 생명 자체가 끝났을지 모른다. 민주당 전체 이해와는 별도로 이 대표로선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버틴 덕에 정치 생명이 죽지 않았다.
이 대표는 최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선고가 내려진 공직선거법 1심 재판 외에도 △위증교사 △대장동·백현동·위례 개발비리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등 총 10개 혐의로 세 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법원의 재판 속도가 빠르면 대선 도전이 물 건너갈 게 뻔해, 이 대표와 지지자들은 장외 집회 등으로 사법부 압박에 더욱 올인하는 모습이다. 대선을 앞당기기 위한 대통령 탄핵 투쟁도 가열될 것 같다.
대권이냐, 감옥이냐. 지난 대선 때부터 나왔던 문구다. 각종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가운데 대선 경쟁은 엄청난 판돈이 걸린 도박판 내지 생사가 걸린 벼랑 끝 승부처럼 됐다. 지금도 그 국면은 바뀌지 않았다. 다음 대선까지 2년 반이나 남았으나,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정국은 사생결단식 대결로 점철될 게 선연하다. 개혁 과제는 산적하지만 정치권에서 이를 풀 실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대립의 교착 상태에서 대한민국의 생명력은 서서히 시들 뿐이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데는 승자독식의 선거제, 정치보복 문화, 정치의 사법화, 극단적 진영화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다. 한두 문제를 개선한다고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87년 체제의 대통령제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판단이다. 대통령 직위에 걸린 엄청난 판돈 자체를 해체하지 않으면, 격렬한 진영 투쟁과 정치 보복의 악순환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정치 풍토에 염증을 느낀다면 내각제 개헌 등 근본적 대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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